미 예금보호 조치 실효성 의문
미국 중소형 은행을 둘러싼 금융 불안을 막을 근본적 조치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예금 보호 한도액을 늘리는 미국 의회의 논의는 지연되고 행정부 차원의 긴급조치 역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미국 정부와 금융 업계는 사실상 추가 붕괴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지원과 처리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2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일시적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장 범위를 모든 예금으로 확대하기 위해 환안정자금(Exchange Stabilization Fund)을 이용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안정자금은 달러 가치 안정을 위해 마련한 기금으로 재무장관이 운영 전권을 가진 자금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의 동의 절차 없이 예금 보장을 확대하는 긴급 조치가 가능한지 검토하면서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행 가능성과 실효성이 문제다. 로이터통신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재무부의 기금을 사용하는 데 대한 합법성 논란과 의회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 현행법상 유동성 사태로 정부가 보장하는 금액이 늘어날 경우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환안정자금의 규모도 작다. 통신은 1월 말 기준 환안정기금의 가용액이 38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3월 현재 미국 은행들의 전체 예금액은 17조 5563억 달러다. 환안정기금을 모두 쓰더라도 추가로 보장할 수 있는 금액은 전체 예금의 0.2%인 셈이다. FDIC의 예금보험기금 1280억 달러를 합치더라도 0.94%에 그쳐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불가피한 분위기다.
중소 금융 업계는 전체 예금에 대한 정부의 보증 없이는 고객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마련된 관련 대책은 두 가지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은행 폐쇄가 일어난 후 예금 전액 보장을 결정하는 정부의 대응과 연준이 개설한 은행유동성공급프로그램(BTFP)이다. 이는 모두 사후적이거나 실제 뱅크런 발생 시 전액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은행들은 보고 있다. 미국 중견은행연합(MBCA)은 이에 “대형 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에서 고객의 신뢰가 꺾이고 있다”며 “앞으로 2년간 모든 예금에 대해 FDIC의 보험을 적용해달라”고 서면 요청한 바 있다.
제도 개선의 열쇠를 쥔 의회는 논의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하원 의장,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 누구도 예금보험 확대에 동의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며 “한도 증가보다 사태 원인을 파악하는 청문회에 집중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정부와 업계는 당장 뱅크런 우려 확산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추가 붕괴 1순위로 꼽히는 퍼스트리퍼블릭 구제가 당면 과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정부는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매각이나 자본 투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분 제한 완화나 부채 보호 등의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시장의 불안감은 계속됐다.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이날 정규장에서 29% 상승 마감했지만 시간 외 거래에서 8.8% 하락했다. 옐런 장관이 이날 은행 업계 행사에서 “다른 은행으로 예치금 인출 사태가 번질 경우 (실리콘밸리은행의 예금 보장과) 유사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발언한 효과는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블랙록의 최고 채권투자책임자인 릭 라이더는 “금융기관에는 여전히 많은 스트레스가 있고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동성도 여전하다”며 “상황이 안정됐다고 판단하려면 앞으로 몇 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