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증거는 없지만 정황증거는 '산더미'…FBI가 1년여간 포렌식
86년간 3대 걸쳐 검사장 맡은 지역사회 유력 법조 가문 출신
가족얽힌 다른 사망사건 의혹도 줄줄이 나와…본인, 끝까지 결백 주장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법조 명문가 출신 50대 변호사가 3일 유죄 평결을 받은 지 하루 만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레턴 카운티 소재 제14구역 지방법원의 클리프턴 뉴먼 판사는 이날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앨릭 머독(54)에게 이같이 선고했다고 AP통신 등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앞서 배심원단은 전날 그에게 유죄평결을 내린 바 있다.
머독은 2021년 6월 7일 저녁 아내 매기(52)와 막내아들 폴(22)을 가족이 사는 저택의 개집 근처에서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6주간 열린 재판에 증인 75명이 출석하고 800건 가까운 증거가 제시됐으나, 전날 배심원 12명이 평의에 들어간 후 평결을 내리는 데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살인 범행에 사용된 총기나 자백, 핏자국 등 직접 증거는 없었으나 정황증거가 산더미처럼 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정황증거에는 숨진 폴의 아이폰에 찍힌 영상도 포함됐다. 재판 과정에서 증인들은 살인사건 발생 5분 전에 촬영된 이 영상에 머독, 매기, 폴 등 3명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고 확인했다.
연방수사국(FBI)의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은 폴의 암호화된 아이폰에서 이 영상을 찾기 위해 1년 넘게 공을 들였다.
머독은 수사 과정에서 사건 현장인 개집에 가지 않았다고 줄곧 주장했으나, 지난달 법정에서 자신의 음성을 담은 영상 증거가 제시되자 거짓 알리바이를 댔다고 시인했다. 다만 그는 이날 판결 직전까지도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머독이 횡령 등 그간 저지른 범죄가 곧 들통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동정심을 유발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독은 수십 년간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돼 약값을 충당하고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횡령 등을 저질렀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 여죄가 드러나면서 머독은 가문이 운영하는 로펌과 의뢰인들로부터 막대한 금액을 횡령하는 등 약 100건에 달하는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그는 2021년 9월 횡령 의혹으로 로펌에서 쫓겨났으며, 그 다음 달에 마약중독자 재활시설에서 체포될 때까지 살인사건 발생 후 4개월간 불구속 상태로 있었다.
그는 로펌에서 쫓겨난 바로 다음 날 누군가가 자신을 쏘아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신고했으나, 상처가 매우 가벼운 점 등 정황이 수상하다고 판단한 수사당국의 추궁 끝에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자해했다"고 털어놨다.
이는 맏아들에게 최소 1천만 달러(130억4천만원)의 보험금이 돌아가도록 하려고 꾸민 일로, 청부업자와 머독은 보험사기 공범으로 기소됐다.
전날 평결 직후 머독의 변호인은 즉각 재판 무효를 선언해 달라고 재판장인 클리프턴 뉴먼 판사에게 요청했으나, 뉴먼 판사는 "유죄의 증거가 압도적"이라며 즉석에서 요청을 기각했다.
로이터통신은 배심원단 대표가 평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머독은 담담한 듯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머독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의 유력 법조 가문 출신인데다 그도 전도유망한 법조인이어서 그가 가족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내용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는 1920년부터 2006년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제14구역 검사장을 3대에 걸쳐 연속해서 맡았다. 이 직위는 관할 구역 5개 카운티 주민이 투표로 뽑는 선출직이다.
이번 사건은 명문가 출신 변호사가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는 점뿐만 아니라 수사와 재판 과정에 다른 의혹들이 잇달아 드러나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숨진 막내아들 폴은 2019년 2월 술에 취한 채 아버지의 보트를 몰다가 과실치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상황이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머독 가문이 백방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2018년 2월 머독 집안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도 사망했는데, 그 죽음에도 수상쩍은 부분이 많았고 보험금 횡령 의혹도 불거졌다.
큰아들 버스터 머독의 고교 친구가 2015년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당시 사건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처리됐으나 용의자가 잡히지 않았고, 2021년 수사당국은 재수사를 결정했다.
피고인 이름의 영문 철자가 'Alex Murdaugh'이고 철자상으로는 마치 '앨릭스 머도'라고 발음될 것 같지만, 본인, 변호인, 검사 등 재판 관계자들과 현지인들이 모두 이를 '앨릭 머독'이라고 발음하는 점도 소셜 미디어와 방송 등에서 화제가 됐다.
이는 옛날 방식 철자와 발음을 따른 것이라는 해설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건과 머독 가문을 둘러싼 의혹과 사연을 소재로 작년 11월 HBO 맥스, 올해 2월 넷플릭스가 각각 3부작 다큐시리즈를 방영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