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베테랑스 에듀
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몰살된 부대원 사진 걸린 날 키이우는 통곡 했다

미국뉴스 | 기획·특집 | 2023-02-23 09:18:36

몰살된 부대원 사진 걸린 날 키이우는 통곡 했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전쟁 1년,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추모의 벽’이 있다. 성 미카엘 대성당을 에워싼 푸른색 벽에 러시아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2017년 추모의 벽 조성 때는 사진이 많지 않았다. 2014년 돈바스 전투 전사자들의 사진이 벽의 한 구역만 채웠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략 이후 전사자가 쏟아지면서 벽의 빈 공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추모객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늘었다. 키이우 시민들은 이곳을 수시로 찾아 슬픔을 나눈다. 키이우를 방문하는 외국 정상과 정치인들도 꼭 들른다. 이러한 비극의 장소가 키이우에 점점 늘어난다. 비극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20일(현지시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추모의 벽을 찾았다. 벽 앞에 서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추모의 벽을 배경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두 팔로 서로 끌어안는 사진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연대’의 상징물이 됐다.

 

21일 한국일보가 둘러본 추모의 벽 앞에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카네이션이 가득했다. 추모객들은 군인들의 얼굴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애통해했다. 류드믈라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전사자가 있는데 아직 사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세계 기자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전쟁 보도를 하곤 한다. 이날도 많은 취재진이 보였다.

 

2014년 전사자와 2022~2023년 전사자들의 사진은 달랐다. 군 당국이 붙인 과거 사진들은 크기가 일정했고, 이름, 나이 같은 정보가 통일된 서체와 크기로 적혀 있다. 최근에 부착된 사진들은 제각각이다. 가족 혹은 동료 병사들이 붙인 사진이라서다. 사진이 얼마나 늘어날지 몰라서 정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나스타시야는 “최근 한 부대 전체가 전사해 한꺼번에 많은 사진이 부착되는 것을 봤다”며 “빈 공간이 순식간에 메워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추모의 벽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엔 ‘독립 광장’이 있다. 2014년 2월 친러시아 정부를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의 중심지로,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여긴다.

 

광장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전쟁 중 사망한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리려 꽂아 둔 깃발이다. 깃발에는 사망자의 이름과 사망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6월 찾았을 때보다 깃발 개수가 3배 이상 늘었다. 8개월 사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일요일인 19일 광장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은 깃발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한 짓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목숨 바쳐 싸우는 군인들을 위해 기부금을 걷었다.

 

키이우엔 ‘용기의 거리’도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각국 지도자의 이름이 각인된 현판이 바닥에 설치돼 있다.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를 닮았다. 지난해 8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성한 것으로,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아무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 각별한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 13명만 새겨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은 20일 추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이다.

 

새겨지는 이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전쟁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 서쪽 도시 르비우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그나마 안전한 도시’로 불린다. 러시아에서도, 격전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아주 안전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온몸으로 전쟁을 겪어내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시내에선 전쟁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장례식이 매일 열린다. 울음 소리가 도심을 꽉 채운다. 도시 외곽에는 격전지에서 도망쳐온 피란민들의 임시 주택이 들어섰다. 고향과 집을 잃은 설움이 넘쳐난다.

 

이곳 역시 전쟁터라는 것을 도착 직후 실감했다. 전쟁을 취재하는 각국 기자들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마련한 ‘미디어센터’를 방문한 직후 공습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센터 관계자는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달라. 어서 대피소로 피하라”고 말했다.

 

‘가장 가까운 대피소’인 근처 맥줏집 지하로 향하는 길. 트램을 비롯한 대중교통이 도로 한복판에 멈춰서 있었다. 공습 경보 땐 운행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피소엔 사람이 꽉 들어찬다.

 

러시아군 미사일이 이처럼 르비우마저 호시탐탐 노렸다. 막심 코지츠키 주지사는 16일 “중요한 기반 시설에서 미사일 공습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시내 교회에선 매일 전사자의 장례식이 열린다

 

르비우 시청이 있는 도시 중심부는 오전부터 분주했다. 경찰차, 구급차가 집결했다. 오전 11시 시청 옆 개리슨 교회에서 르비우 출신 전사자들의 장례식이 예정돼 있었다.

 

장례식은 전장에서 사망한 영웅인 안드리 무라우스키와 발레리 골렌코우를 기리고자 르비우시가 준비했다. 두 사람은 모두 51세이고, 영토방위군 서부지역 125사단에 소속돼 복무하다 목숨을 잃었다.

 

외곽에 조성된 이재민 마을엔 설움이 가득하다

 

르비우 외곽에는 교전 지역에서 탈출한 피란민들이 머무는 임시 주택이 들어섰다. 르비우가 수용한 국내 실향민은 누적 24만5,000명에 달한다(지난달 29일 기준). 여전히 15만 명이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일보는 르비우 남쪽 대형 스포츠 경기장 인근에 조성된 모듈형 임시주택촌을 찾았다. 공터에는 단층 또는 2층짜리로 된 컨테이너 건물이 꽉 들어찼다. 1,4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몇 명인지, 얼마나 노령인지 등을 기준으로 입주가 결정된다. 기준이 충족되면 신청 후 1, 2주 뒤 입주할 수 있다. 현재 700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이 중 200명 정도는 18세 이하다. 전기료, 난방비가 지원되고 기본적인 생필품도 제공된다. 하루 한 끼가 무료로 배급된다.

 

임시주택 관리자인 빅토르의 허락을 받아 내부를 둘러봤다. 건물엔 복도식 아파트처럼 층마다 20개 정도의 방이 있었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오븐 등이 층마다 비치돼있다. 시설이 좋은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화장실, 샤워실, 부엌 등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써야 한다. 한 가족당 방이 한 개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 ‘개인 공간’을 누릴 수도 없다. 한 입주민은 “남은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고 했다.

 

<신은별 특파원 >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메모리얼 연휴 4,300만 떠난다
메모리얼 연휴 4,300만 떠난다

AAA, 사상 최대 전망 올해 메모리얼 데이 연휴기간 4,400만명에 가깝게 여행을 떠날 것으로 예상됐다.전미자동차연합(AAA)은 메모리얼데이 연휴기간인 23~27일 전국에서 약

‘아늑하다’속뜻엔‘작다’있었네… 매물 설명 주의해야
‘아늑하다’속뜻엔‘작다’있었네… 매물 설명 주의해야

매물은 대개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통해 홍보된다. 최근 전문 업체가 촬영한 사진과 영상, 가상 투어 영상 등이 바이어의 눈을 사로잡지만 글로 묘사된 설명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모기지, 다운페이 20% 없어도 대출 가능 프로그램 많아
모기지, 다운페이 20% 없어도 대출 가능 프로그램 많아

내 집을 마련할 때 가장 최대 걸림돌이 모기지 대출이다. 특히 다운페이먼트 마련이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최근에는 모기지 이자율마저 급등해 섣불리 모기지 대출을 신청하기 겁날

당신의 비밀번호 1초면 뚫린다

너무 흔한 조합 사용해 ‘1234’ 가 전체의 11% 매년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기와 사이버 공격의 희생양이 되면서 비밀번호와 PIN 번호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

“학업 스트레스·성공 압박에” CNN ‘멍때리기 대회’ 조명

CNN 방송이 학업 스트레스와 성공에 대한 압박이 극심한 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이 올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모였다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강 멍때기리 대회’를 조명했

부담 큰 대학 학자금 대출, 신중히 결정해야
부담 큰 대학 학자금 대출, 신중히 결정해야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부담스러운 학비 때문에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12학년생이 해마다 많다. 올해의 경우‘연방 학자금 보조 무료 신청서’(FAFSA) 지연으로 입학 결정

억지로 목소리 내다간 목에도‘굳은살' 생긴다
억지로 목소리 내다간 목에도‘굳은살' 생긴다

목이 쉰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성대에 무엇이 생겼는지 의심해야 한다. 성대에 결절이나 용종(폴립)이 생기는 음성 질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가수·교사 등 목을 많이 쓰는

40세 이상 당뇨환자, 탄수화물 섭취 10% 늘면 사망률 10% 높아져
40세 이상 당뇨환자, 탄수화물 섭취 10% 늘면 사망률 10% 높아져

40세가 넘은 당뇨병 환자가 탄수화물을 전체 섭취 열량의 70% 이상 섭취하면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이지원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권유진 용인세브란스병

눈앞에 날파리 날아다니는 듯… 망막박리로 실명 위험
눈앞에 날파리 날아다니는 듯… 망막박리로 실명 위험

김모(48·여)씨는 얼마 전부터 눈앞에 날파리와 먼지가 둥둥 떠다니고, 불빛이 깜빡거리는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눈이 피로하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

혈압은 높지 않은데 고혈압 약 처방해야 할 때
혈압은 높지 않은데 고혈압 약 처방해야 할 때

단백뇨는 신장내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흔한 질환의 하나다. 건강검진에서 단백뇨 소견이 나와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대개는 증상이 없다. ‘거품뇨’ 증상이 있어 진료받으러 왔다가 단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