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정숙희의 시선] 유자 왕의 라흐마니노프

지역뉴스 | | 2023-02-22 15:37:14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올해는 임윤찬 때문에 우리와 부쩍 가까워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탄생 150주년이자 타계 80주기가 되는 해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의 유산을 기리는 행사를 잇달아 열고 있는데, LA 필하모닉도 2월9일부터 19일까지 두 주말에 걸쳐 그의 대표작들을 공연하는 ‘라흐마니노프 사이클’을 개최했다.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로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36)이 협연한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가 하이라이트였고, 이와 함께 관현악곡인 ‘심포닉 댄스’와 코랄 심포니 ‘벨스’(The Bells)도 들을 수 있었던 특별한 행사였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는 198cm의 장신에 건반 13개를 누르는 큰 손을 지녔던 만큼 피아노라는 악기의 극한까지 탐구하는 협주곡을 4개 썼고, 피아노변주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역시 대단해서 이를 5번째 피아노협주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2번이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고,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라는 에릭 카멘의 노래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이루지 못할 사랑을 가슴 저미게 그린 영화 ‘짧은 만남’(Brief Encounter, 1945)에서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장중하고 비감미 넘치는 2번 협주곡의 선율이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이 3번, 임윤찬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연주영상이 현재 998만 뷰를 넘어선 바로 그 화제의 협주곡이다. 이 곡 역시 영화 ‘샤인’(1996)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라흐 3번에 집착하다가 미쳐버린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그린 이 영화에서 협주곡 3번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이며 “미치지 않고서야 칠 수 없는 곡”으로 묘사된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곡인데 사실 요즘 웬만한 정상급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은 미치지 않고도 충분히 소화해내는 인기 레퍼토리의 하나다.

수퍼스타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지난달 말 뉴욕 카네기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하루에 모두 연주하는 전무후무한 마라톤 콘서트를 열었다. 야닉 네제 세갱이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4시간 반 동안 5개 콘체르토를 연달아 공연한 것이다. 

현지에서 나온 리뷰에 의하면 그 모든 협주곡에다 앙코르까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매번 처음처럼 명료하고 파워풀하고 눈부시게 연주했다고 한다.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기교를 자랑하는 유자 왕이 다섯 번 모두 다른 드레스를 입고 나와 눈까지 즐겁게 해준 모양이다.

이번 LA필의 ‘라흐마니노프 사이클’ 동안 3번과 4번의 공연에 갔었다. 3번은 임윤찬의 연주와 비교해보고 싶어서였고, 4번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갔다. 

과연 두 사람의 3번 연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유자 왕은 일단 스피드가 훨씬 빨라서 테크닉이 더 화려하게 표현됐고 국제무대에서 수없이 연주해본 베테란답게 노련하고 유려했다. 반면 임윤찬은 콩쿠르라는 어마어마한 압력감 때문인지 한 음 한 음에 사력을 다하는 밀도 깊은 연주로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마디로 임윤찬의 연주는 깊이와 혼이 서린 남성적인 연주였고, 유자 왕의 연주는 세밀하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성적인 연주였다. 그런데 나이(유자 왕이 두배)와 경력과 국제적 지명도를 감안한다면 누가 승자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3번 연주에서 또 달리 느낀 것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움이었다. 콩쿠르 영상은 아무래도 피아노 중심으로 녹음되기 때문에 관현악 연주는 대충 흘려듣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두다멜의 사려 깊은 지휘로 라이브 연주를 들으니 오케스트라 반주가 어찌나 깊고 풍성하고 아름답던지, 슬라브 적 광대함과 서정 넘치는 마이너(단조) 협주곡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오랜만에 유자 왕의 무대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유난히 튀는 그녀의 연주패션이 공론화된 것은 2011년 할리웃보울에서의 라흐 3번 연주 때였다. 몸에 짝 달라붙는 초미니 진홍색 드레스에 ‘킬힐’을 신고 나온 당시 24세의 왕에 대해 LA타임스의 음악비평가 마크 스웨드가 “18세 이하는 입장 금지를 시켜야겠다”고 쓴 이후 클래식 연주자의 드레스코드 논쟁이 불붙었었다. 이후에도 몇몇 비평가들이 등허리나 옆구리, 허벅지를 완전히 노출시킨 야한 드레스에 대해 ‘스트리퍼’ 같다는 등 비호의적 시각을 내비쳤지만 유자 왕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매번 지나치게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킬 힐 워킹으로 세계무대를 누벼왔다.

이번 LA필의 연주에서도 그녀는 이틀 모두 다른 색의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는데 정도가 좀 심했다. 이건 드레스가 아니라 수영복이었다. 어깨와 등을 다 드러낸 건 뭐 언제나 그랬으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앞품만 간신히 가린 치마가 어찌나 짧던지, 전 옥타브를 넘나드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치느라 엉덩이를 이쪽저쪽으로 들썩일 때마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무려 4인치의 스틸레토 힐은 신고 걷기도 버거워 보이는데 어떻게 페달을 밟는지 그 또한 경이로운 묘기수준이었다.

유자 왕은 대단히 섹시하고 날씬하며 매혹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몸매가 아니라 피아노 연주로 승부해야 하는거 아닐까? 유자 왕 팬이었는데 점점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숙희의 시선] 유자 왕의 라흐마니노프
정숙희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사우스 풀턴시에 반이민 전단지 살포
사우스 풀턴시에 반이민 전단지 살포

반이민 전단지 공원에 살포돼경찰, 전단지 발견 신고 당부 사우스 풀턴시는 시의 한 공원에서 발견된 위협적인 반이민 전단지를 조사하고 있다.전단지는 캐스케이드 로드의 트래멀 크로우

대선 패배 조지아 민주당 자중지란
대선 패배 조지아 민주당 자중지란

당 의장 사임 여부 놓고 휴글리 신임 원내대표 오소프 상원의원 대립  2024 대선에서 조지아 선거인단을 공화당에 넘겨주면서 패배한 조지아 민주당이 당내 갈등이라는후폭풍에 휩싸였다

귀넷 두 곳, 살기 좋은 남부 소도시 탑 25
귀넷 두 곳, 살기 좋은 남부 소도시 탑 25

버클리 레이크 2위·그레이슨 15위  귀넷의 소도시 두 곳이 남부에서 가장 살기좋은 상위25개 소도시에 선정됐다.교육전문 온라인 사이트 니치(Niche)는 최근 남부지역 인구 5,

델타항공, 1등석 고객에 셰이크 쉑 치즈버거 제공
델타항공, 1등석 고객에 셰이크 쉑 치즈버거 제공

12월 1일부터 보스턴 출발 항공편 제공900마일 이상 비행 노선, 2025년 확대 델타 항공은 12월 1일부터 보스턴 출발, 애틀랜타행 항공편을 포함해 특정 항공편의 퍼스트 클래

끊이지 않는 개인정보 유출… 피싱 사기 악용 성행
끊이지 않는 개인정보 유출… 피싱 사기 악용 성행

해당 회사 직접 연락해 사실 확인의심스러운 계좌 내역 있나 확인사기 경고 설정하고 의심 내역 신고신용 동결로 계좌 무단 개설 방지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바이든, 우크라에 대인지뢰 공급승인"…'한반도밖 사용 금지' 뒤집기
"바이든, 우크라에 대인지뢰 공급승인"…'한반도밖 사용 금지' 뒤집기

WP, 美 당국자 인용 보도…"트럼프 2기 직전에 우크라 지원 긴급 조치"美, 민간인 위험 작은 '비지속성 지뢰' 주장…인권단체 "충격적" 비난 쇄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불체자 대거 추방, 식료품값 폭등 불러올수도”
“불체자 대거 추방, 식료품값 폭등 불러올수도”

트럼프 2기 반이민 정책 현실화 여파는 “전국 농장 노동자 중 불법신분 41% 달해” 노동력 부족·비용 증가 ‘식탁 물가’ 덮치나 중가주 살리나스 남쪽의 농장에서 멕시코 출신 노동

암 자가진단… 가정용 유전자 검사, 가치가 있을까?
암 자가진단… 가정용 유전자 검사, 가치가 있을까?

종양 전문의의 조언전체 암 중 5~10%만 유전적 변이 관련의사와 상담해 더 포괄적인 검사도 가능 암 관련 유전자 검사에 관심이 있다. 가정용 검사가 좋은 선택일까? 유전자 돌연변

“불체자 추방과정 공개하라”… 시민단체 소송
“불체자 추방과정 공개하라”… 시민단체 소송

ACLU, 이민세관단속국에 트럼프 취임 앞두고 요구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당국의 구체적 추방 과정을 공개하라며

‘오겜 2’ 초미의 관심…“놀라운 반전 곳곳에”
‘오겜 2’ 초미의 관심…“놀라운 반전 곳곳에”

넷플릭스 “성공 자신감” 전 세계 미디어 LA에 초청 신작 50여편 라인업 소개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