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인플레이션 논란
물가가 꿈틀대던 2021년 7월 연방의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연준의 대표적인 물가 오판 사례로 남았다.
2023년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 파월 의장은 “이제 우리는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긴축 주기에서 물가 둔화가 시작됐다는 첫 선언이었다.
과연 파월 의장이 이번에는 정확한 진단을 내렸을까, 아니면 ‘일시적’이라는 표현과 함께 ‘디스인플레이션’은 연준의 오판을 상징하는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까.
지난해 4분기 물가 둔화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물가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월가와 학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고용 시장 호조와 상품 가격 상승, 소매판매 증가 등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3일 모하메드 엘에리언 퀸즈칼리지 총장은 “현재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확실성은 생각보다 더 크며 디스인플레이션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도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전 연방 재무장관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라며 “물가는 2년 전에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 실제로 완전히 하락세에 접어들지도, 통제 가능하지도 않다”며 낙관론을 꼬집었다.
물가에 대한 이같은 우려는 무엇보다 인력 부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은 임금 상승을 유발해 물가를 밀어올리는 요인이다. 1월 고용보고서에서 비농업 분야 신규 고용은 51만7,000개 늘었다. 시장 전망치(18만7,000개)를 세 배 가까이 웃돈다. 실업률은 3.4%로 1969년 이후 가장 낮았다. 집쿠르터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줄리아 폴락은 “이 정도 고용 수치는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지나치게 높다”며 “인플레이션 하락은 경제적 허구”라고 말했다.
하락했던 상품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1월까지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맨하임중고차지수는 12월 상승 전환에 이어 1월에도 2.5% 올랐다.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의 최고경영자(CEO)인 제이 해트필드는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를 이끌던 항목은 중고차였지만 이제 가격 하락은 끝났다”고 말했다.
물류비도 오르고 있다. 웨어하우스쿼트에 따르면 1월 미국 물품보관비는 전월 대비 1.4%, 전년 대비 10.6% 상승했다. 이용자는 많지만 창고 공급이 넉넉하지 않아서다. ITS로지스틱스의 폴 브래셔 부사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창고 비용 외 연체료·수수료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상품 가격이 예상만큼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소비자 수요는 다시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5일 발표 예정인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0%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 폭이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11월과 12월 쇼핑 시즌 당시 마이너스를 기록해 인플레이션 둔화에 기여했다. CNBC는 “기업 콘퍼런스콜을 분석한 결과 최근 몇 주 동안 소비자 지출이 급증했다는 기업들의 의견이 잇따랐다”며 “소비 회복이 이번 실적 시즌의 두드러진 메시지”라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 산업계에서도 디스인플레이션을 체감한다는 목소리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CNBC가 미국 2371개의 중소기업 대표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4%가 인플레이션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채권시장도 인플레이션 상승을 전제하는 분위기다. 이날 미 국채 시장에서 10년물 수익률은 3.7%로 거래돼 전날보다 0.94%포인트 하락한 반면 정책금리에 민감한 2년물 수익률은 0.01% 오른 4.521%에 거래됐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됐다. 모트캐피털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인 마이클 크레이머는 “증시는 물가를 우려하지 않는 듯하지만 옵션·채권 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이 높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