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2월6일까지 '캘리브리'로 교체 완료 지시
국무부 내부 "신성모독" 부글부글, 거부감 논란도
미국 국무부가 재외공관 등 산하 조직이 문서에 쓰는 글꼴을 현행 타임스뉴로먼(Times New Roman)에서 '캘리브리'(Calibri)로 변경토록 지시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 보도했다.
WP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17일 이런 지침을 담은 공문을 하달했으며 다음달 6일까지 이를 준수토록 시한을 못박았다고 전했다. 기본 글꼴 크기는 14포인트다.
이 지침은 국무부 "7층"으로 불리는 장관 등 고위직 사무실에 전달되는 모든 문서에 적용된다. 따라서 보고나 전달이 이뤄지는 문서는 모두 이런 양식을 준수해야 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 4일 블링컨 장관이 국무부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부서의 권고에 따라 "접근성이 보다 나은 글꼴"을 쓰도록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캘리브리는 '산세리프'(san serif), 즉 글자 획 끝 일부가 장식성으로 돌출된 '세리프'(serif)가 없는 글꼴이다. 기존 타임스뉴로먼은 세리프가 있는 글꼴이다.
다양한 요소가 있어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시각장애인 등이 직접 읽거나 이들을 돕는 컴퓨터 인식 프로그램 등으로 판독하는 데는 세리프 글꼴보다 산세리프 글꼴이 보다 나은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무부는 2004년 2월부터 "7층"에 보내는 모든 문서의 글꼴을 타임스뉴로먼으로 써 왔다.
여러 해에 걸쳐 타임스뉴로먼 글꼴로 통신문과 공문을 타이핑해 온 국무부와 재외공관 직원들은 이런 글꼴 변경에 거부감이 심하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아시아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 직원은 "내 동료 중 한 명은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불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WP는 펜타곤(미국 국방부) 같은 기관들과 달리 국무부의 영역에서는 "말"이 화폐처럼 통용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외교관 직원은 "내부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이는 동료들끼리 잡담에서 강한 찬성으로부터 가벼운 불평까지 의견이 나왔다며 "하루 중 절반 정도는 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WP는 최근 여러 해 동안 디자인계에서 세리프 글꼴들이 유행에서 밀려났으며 여러 소비자 브랜드들이 로고에서 헬베티카(1957년에 스위스에서 개발돼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산세리프 글꼴) 등 보다 깔끔하게 보이는 산세리프 글꼴들을 채택했다고 지적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한 잡지는 2018년에 "밀레니얼(대략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세리프를 죽였다"는 헤드라인을 달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타임스뉴로먼을 자사 제품들에서 기본 표준으로 써 오다가, 2007년부터 기본 글꼴을 캘리브리로 바꿨다. 이어 2021년에는 앞으로 캘리브리 대신 새로운 자체 개발 산세리프 글꼴 5개 중 하나를 쓰도록 유도해 나갈 것이라는 새 방침을 밝혔다.
런던에 사는 타이포그래피 전문 디자이너 잭 르웰린은 수만명의 직원이 있고 전세계 곳곳에 270여개 공관이 있는 국무부가 문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글꼴을 교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글꼴에 따른 접근성 문제가 해결해야만 할 중요한 이슈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