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이 정상적인 작동을 멈춘 듯하다. 눈 깜짝할 사이 치솟은 모기지 이자율에 수많은 바이어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기 전에 집을 팔려고 했던 주택 보유자 역시 높은 이자율 때문에 주택 처분 타이밍을 놓친 것으로 판단 중이다. 집이 팔리더라도 새집을 구입하려면 높은 이자율을 부담해야하기 때문에 주택 처분 대신 당분간 그냥 눌러앉는‘스테이 풋’(Stay Put) 보유주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주택 시장 상황을 마치 처음 겪는 것 같지만 40년 전인 1980년대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에도 언론은 최악의 주택 시장 상황을 강조하며 마치 내 집 마련의 꿈이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보도하곤 했다. 온라인 재정 정보 업체‘너드월렛’(NerdWallet)이 현재 주택 시장 상황을 1980년대와 비교했다.
모기지 이자율 단기 급등에 거래 실종
지금 주택시장 당시와 여러모로 흡사
◇ 베이비 붐 세대 vs 밀레니엄 세대
현재 주택 시장의 수요 주축 세대가 80년대와 너무 흡사하다. 1981년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베이비 붐 세대의 연령은 35세였다. 대학 졸업, 취업, 결혼 연령대로 접어든 이들은 당시 주택 시장에서 중심 수요 축으로 급부상했다.
1981년은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로 초기 밀레니엄 세대가 출생하기 시작한 해다. 현재 부모 세대에 진입한 초기 밀레니엄 세대는 두터운 인구층을 앞세워 이미 10여 년 전부터 주택 시장 수요를 이끌고 있는 세대다.
◇ 이자율 단기간 급등
두 세대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모기지 이자율 급등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 세대라는 것이다. 1981년 10월 30년 만기 고정 이자율은 사상 최고치인 18.63%를 찍었다. 현재 이자율 수준보다 2배 이상 높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당시 이자율은 1년 사이 무려 5% 포인트씩 급등하며 많은 바이어들로 하여금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게 했다.
그런데 올해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 30년 만기 고정 이자율이 12개월 사이 4.1% 포인트 상승, 7.08%(11월 초 기준)까지 올랐다. 80년대 초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무서운 속도의 이자율 상승세가 아닐 수 없다.
◇ 거래 절벽
모기지 이자율 급등으로 인해 올해도 수많은 바이어가 80년대 초와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80년과 81년 주택 거래는 전년 대비 각각 약 22.3%와 약 18.6%씩 급감했다.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에 따르면 올해 10월의 경우 재판매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8.4%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80년대 초에도 지금처럼 ‘사고 싶어도 못 사고, 팔고 싶어도 못 파는’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이미 급등한 이자율과 비교해 기존 이자율이 매우 낮아 집을 팔려는 사람이 자취를 감췄고 이로 인한 매물 부족으로 바이어들은 내 집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이다.
1981년 한 부동산 업체 대표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낮은 이자율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라며 이자율 급등으로 주택 거래가 끊겼던 당시 상황을 묘사한 바 있다.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9월 “일부 주택 보유주들은 사상 최저 수준의 이자율을 묶어 두기 위해 필요한 주택 구입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라며 80년대 초와 비슷한 주택 거래 절벽 현상을 전했다.
◇ 양도 가능 모기지 지금은 크게 줄어
지금 주택 시장 상황이 80년대 초와 매우 흡사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셀러의 기존 모기지 대출을 바이어가 떠안을 수 있는 ‘양도 가능한 모기지 대출’(Assumable Mortgage)이 당시에는 많았던 것이 지금과 크게 다른 점이다. 양도 가능한 모기지는 지금처럼 모기지 이자율이 치솟는 시기에 주택 거래 감소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80년대 초 모기지 이자율이 두 자릿수를 넘길 때 많은 바이어가 양도 가능 모기지 대출 끼고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모기지 양도 방식의 주택 거래는 이자율이 낮은 셀러의 기존 모기지의 대출 잔액과 조건을 바이어가 그대로 떠안는 방식의 계약이다. 80년대 초 모기지 이자율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치솟자 ‘이자율 14% 시대에 8%대 이자율을 보유하고 있다면 집을 팔 때 확실한 차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광고 문구까지 등장할 정도로 모기지 양도를 통한 주택 거래가 성행했다.
그러나 1982년 의회가 양도 가능 모기지 대출 발급 규제안을 시행한 이후 현재 양도 가능한 모기지 대출 비율은 크게 줄었다. ‘연방 주택국’(FHA), ‘재향 군인회’(VA), ‘연방 농무국’(USDA) 등 정부 기관이 보증을 서는 이른바 정부 융자를 제외한 일반 융자는 양도가 금지되고 있다.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어번 인스티튜트에 의하면 현재 양도 가능 모기지가 전체 모기지 중 차지하는 비율은 약 18%에 불과하다.
◇ 비공식 모기지 양도 주의해야
양도 가능한 모기지는 80년대 초 주택 거래가 중단될 뻔한 위기를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모기지 양도를 낀 주택 거래는 바이어가 셀러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약속 어음’ 발급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택 거래 가격과 셀러의 모기지 잔액과의 차액은 바이어가 2차 융자를 발급받는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1981년 전체 주택 거래 중 기존 모기지 양도 방식으로 이뤄진 거래가 절반을 넘을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80년대 초와 같은 모기지 양도 방식의 주택 거래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합법적으로 양도 가능한 모기지 대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 최근 셀러와 바이어 간 비공식적 경로로 일반 융자를 양도하는 조건의 주택 거래가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소비자 보호 단체는 불법적으로 체결된 모기지 양도 조건 방식의 주택 거래 계약은 무효하고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