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 투자 트렌드
지난 13년간 강세장을 주도해 온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5개 빅테크(거대기술기업), 이른바 ‘FAANG’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1일 보도했다.
메타는 지난 10월 마크 저커버그가 밝힌 4분기 실적 전망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하루 만에 시가총액의 25%가 사라졌으며, 아마존도 4분기 실적이 역사상 최악일 것으로 전망한 후 하루 7%나 빠지는 등 ‘FAANG’ 주식이 올해 들어 20∼66%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들이 다시 시장을 주도하는 예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말 닷컴 붐 당시 주도주였던 시스코시스템스와 인텔이 2000년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다시 옛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 야누스 헨더슨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리처드 클로드는 “‘FAANG’이 기술주 주도의 차기 강세장을 이끌 수 없을 것으로 보여 관련 주식을 대부분 매각했다”며 ‘FAANG’ 용어가 생긴 이래 관련 주식 보유 비율이 가장 낮다고 전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체 증권시장을 흔들어 놓은 후 시장이 재반등할 때 ‘FAANG’ 등 대형 기술주들이 시장의 고공행진을 주도했다. 도시봉쇄로 소비자들은 아마존을 통해 제품을 구입하고 넷플릭스에 가입해 콘텐츠를 소비했으며, 애플의 아이폰을 이용해 페이스북을 보거나 구글 검색을 함으로써 이들 기업이 고속성장을 구가한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봉쇄가 풀리고 금리 급등으로 투기 성향이 약화하면서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장기 투자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동안 이들 테크기업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강력한 성장성이었으나 최근 들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지난달 대형 기술주의 특징인 ‘우월한’ 매출 성장이 최소한 올해는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대형 기술주들이 올해 8%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만 기술주뿐 아니라 일반 기업도 소속돼 있는 S&P 500에 포함된 기업들은 1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기술주의 고난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애널리스트들은 내년 미국 시장 상장기업들의 이익이 2.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술기업들은 1.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자들이 높은 대출비용과 인플레이션(물가 인상) 등으로 투자 대상 선정에 매우 까다로워지고 있어 메타의 메타버스처럼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대형투자 프로젝트에는 투자를 꺼릴 것으로 전망됐다.
투자은행 시노부스 트러스트의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 대니얼 모건은 “2년 전에는 ‘FAANG’이라는 다트판에 다트 핀을 던지면 승자가 될 확률이 높았지만 아마도 더는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테슬라와 줌 등 기술주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월스트릿의 투자자들도 인내심을 잃는 분위기다.
월스트릿저널(WSJ)은 12일 유명투자자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먼트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드 CEO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직후 테슬라와 같은 고성장 기술주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스타 투자가다. 한국에서도 ‘돈나무 언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명해졌다.
그러나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통화정책 이후 우드 CEO의 펀드는 시장 수익률에도 한참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도 올해 17%의 손실을 기록했지만, 우드 CEO의 대표 상품인 아크이노베이션 ETF의 손실은 63%나 됐다. 이날 아크이노베이션 ETF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약 34달러로 최근 5년간 최저수준이다.
시장 수익률보다도 훨씬 저조한 이유는 우드 CEO가 주가 하락에도 기술주의 반등을 과신하면서 오히려 더 공격적인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드 CEO는 화상회의 업체 줌의 경우 오는 2026년까지 주가가 1,500달러로 뛰어오를 것이라면서 지분을 늘렸다. 그러나 1년 전 200달러 선이었던 줌의 주가는 현재 3분의 1토막 수준인 70달러까지 떨어졌다.
또한 우드 CEO는 오는 2030년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00만 달러로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면서 가상화폐 관련 종목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기도 했다. 아크이노베이션 ETF는 미국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의 2대 주주이지만, 올해 코인베이스의 주가는 84%나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