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서 첫 대면 회담…갈등 관리 의지 보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현지 시간)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미중 관계와 대만·북한 문제 등 광범위한 글로벌 이슈를 3시간 8분에 걸쳐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서로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화가 이어졌다.
두 정상은 이날 별도의 공동성명은 채택하지 않았으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양국 갈등에 대한 대응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대만 문제와 수출 통제 등 핵심 이슈를 놓고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회담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물리아호텔에서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됐다. 미국 측에서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이 배석했으며 중국에서는 딩쉐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등이 자리해 양국의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 실세로 꼽히는 고위직 인사가 8명씩 참석했다.
이번 회담은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국내 정치적 입지가 강화된 상태에서 이뤄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시 주석은 지난달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바로 전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해 향후 2년간 대외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기반을 마련했다.
회담에 앞서 양국 정상은 상호 협력과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미국과 중국은 의견 차를 관리해 경쟁이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긴급한 국제 현안에 대해 공조 방안을 강구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후변화, 식량 불안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세계는 우리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고 중국 역시 이를 원한다면 미국은 즉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양국 수교 이후 50여 년간 득실도, 경험과 교훈도 있었다”며 “역사를 거울 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미중 관계에 대해 “양국과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에도, 국제사회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시 주석은 이어 “미중 관계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고 “시대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중 관계를 안정적인 발전 궤도로 되돌려 전 세계가 이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억제할 중국의 건설적 역할도 촉구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적극적인 억제를 중국에 당부하는 동시에 북한이 도발을 강행할 경우 중국도 유엔 제재 강화에 동참하라는 고강도 압박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모두 발언에서 언급했듯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미중 양국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8월 대만 방문 이후 주요 대화 채널이 모두 단절된 상태다. 백악관 당국자는 “기후변화와 보건 문제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분야에서 함께 일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다만 대만 문제 등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과 ‘대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시 주석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 등이 미국의 ‘레드라인’임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