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잘나갔던 주택 시장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주택 거래가 수개월 연속 감소하더니 급기야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내 소비자가 바라보는 주택 시장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을 확신하는 소비자는 늘어난 반면 오를 것으로 보는 소비자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모기지 이자율은 다시 큰 폭으로 올라 6%대 진입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주택 거래 실종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둔화와 침체의 기로에 놓인 주택 시장 현황을 진단한다.
이자율 빼고 모든 조건 바이어에게 유리
건설업체 임대용 단독 주택 분양에 관심
◇ 집값 내려갈 것으로 보는 소비자 늘어
주택 가격은 시장 내 매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시장 내 소비자의 심리도 주택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한동안 집값 하락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았으나 최근 변화가 생겼다. 최근 조사에서 향후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는 증가한 반면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소비자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패니메이가 8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이내에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7월 조사 때의 30%에서 33%로 늘었다. 반면 향후 12개 이내에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같은 기간 39%에서 33%로 9%포인트나 떨어졌다.
패니메이가 집계하는 ‘주택 구매 심리 지수’(HPSI) 역시 하락세다. 8월 HPSI는 62로 전달 대비 0.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HPSI가 201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것은 주택 시장 침체기였던 당시만큼 현재 주택 구입 심리가 얼어붙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이자율 빼고 모든 조건 바이어에게 유리
모기지 이자율이 또 큰 폭으로 올랐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프레디 맥의 8일 발표에 따르면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이자율(전국 평균)은 5.89%로 전주 대비 0.23%포인트 상승, 6%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재융자에 많이 사용되는 15년 고정 이자율 역시 0.18%포인트 오른 5.16%로 결국 5%대를 넘어섰다.
모기지 이자율 급등에 주택 구매 심리는 빠르게 얼어붙는 중이다. 하지만 주택 시장 상황은 점차 바이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거침없이 오르던 주택 가격이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셀러가 부르는 매물 호가는 6월 중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바 있는데 8월 중 매물 호가는 6월 대비 6%나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호놀룰루 등 주택 가격 급등 도시의 주택 실제 매매가는 8월 중 3% 넘게 하락했다.
한동안 리스팅 가격보다 비싸게 구입하는 ‘웃돈 경쟁’이 판을 쳤다. 이제 웃돈 경쟁은 찾아볼 수 없고 리스팅 가격보다 낮게 팔리는 매물이 늘고 있다. 8월 팔린 매물 중 호가보다 낮게 팔린 매물 숫자가 2021년 3월 이후 처음으로 호가보다 비싸게 팔린 집을 넘어섰다. 바이어가 가장 반기는 소식은 매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도 마땅한 매물을 찾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매물 부족 사태를 겪어왔다. 8월 시장에 나온 매물은 연간 대비 4.2% 증가한 수준으로 6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세다.
주택 수요가 줄고 매물이 증가하자 바이어 간 치열한 주택 구입 경쟁은 잠잠해졌다. 7월 중 복수 오퍼를 받은 매물은 전국적으로 44%로 2020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물이 나오자마자 팔리는 현상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 6월 매물이 팔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17일로 역대 최단기간이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매물 판매 기간이 26일로 늘어나 바이어가 이제 서두를 필요 없이 주택 구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 모기지 신청 실종
모기지 이자율이 6%대에 근접하자 주택 구입 활동과 재융자 신청이 일시에 중단됐다. ‘모기지 은행업 협회’(MBA)는 7일 모기지 신청 규모를 기준으로 집계하는 ‘시장 종합 지수’(MCI) 258.1(2일 기준)로 2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수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705.6을 기록할 정도로 모기지 신청이 매우 활발했다.
주택 가격과 모기지 이자율이 단기간 내에 하락할 가능성이 희박해 많은 바이어가 일단 지켜보자는 관망 모드로 돌아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주택 수요 급감으로 주택 시장은 조정기 진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주택 건설업체는 신규 주택 공급량을 줄이기 시작했고 셀러도 주택 수요가 살아날 때까지 주택 처분을 미루는 분위기다.
MBA는 최근 발표된 노동 시장 지표가 주택 시장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경기 침체 전망에 모기지 이자율이 당분간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MBA는 “고용 증가가 주택 구입 수요 자극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소득 증가로 주택 구입 능력이 개선되면 얼어붙은 주택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건설업체 임대 주택으로 눈 돌려
주택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자 판매용 신규 주택을 임대용으로 전환하는 건설업체가 등장했다. 이 같은 현상은 주택 시장 냉각 속도가 빠른 남가주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존 번스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릭 팔라시오 주니어 디렉터는 “주택 시장 침체를 우려하는 건설업체가 주택 임대 시장을 위험 ‘헤지’(Hedge) 기회로 보기 시작했다”라고 최근 현상을 설명했다.
부동산 정보 업체 존다의 앨리 울프 수석 이코노미스트 “2~3년 전만 해도 임대 주택 분양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건설업체들이 임대용 단독 주택 분양에 나서고 있다”라며 “현재 임대수요가 높아 수익성이 높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다운페이먼트 마련에 대한 걱정이 없어 회전율이 높을 것이란 판단이다”라고 설명했다.
◇ 자연재해 지역 건축 주택 급증
자연재해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최근 10년간 지어진 신규 주택 대부분이 자연재해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레드핀이 기후 정보 공유 업체 ‘클라이밋체크’(ClimateCheck)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건축된 주택 중 절반이 넘는 55%가 산불 등 화재 위험이 높은 지역에 지어졌다. 최근 남가주 등 많은 지역이 극심한 가뭄 현상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가뭄 고위험 지역에 위치한 신규 주택은 전체 중 45%를 넘었다.
한편 최근 2년 사이 지어진 신규 주택 대부분(99.5%)은 이상고온 지역에 위치했다. 온실 개스 배출 증가로 전 세계적으로 이상고온 지역의 규모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주택이 이상고온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다. 이어 최근 2년간 분양된 신규 주택 중 약 78.2%는 폭풍 위험 지역에 지어졌고 약 26%는 홍수 위험 지역에서 분양됐다. 1900년~1959년 지어진 주택과 비교할 때 화재 고위험 지역에 지어진 주택은 14%에서 56%로 급증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