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학년생 A 군은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온몸이 새파랗게 변했고 혀가 말려 기도도 막혔다. 심정지 상태에 빠진 A 군을 발견한 교사는 서둘러 가슴 압박과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했다. 이를 지켜보던 같은 반 김다율 양은 심장 제세동기(자동심장충격기ㆍAED)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 양은 학교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비치된 AED를 신속히 가져와 작동하고 음성 안내에 따라 조치를 취했다. A 군은 신속한 응급 처치 덕에 의식을 점차 되찾았고 병원으로 이송돼 건강을 회복했다. 김 양은 교내 보건동아리 활동을 하며 심폐소생술과 응급 처치 실습을 받아 A군을 구조할 수 있었다. 김 양은 이 경험을 계기로 간호학과로 진학했다. 김 양은“많은 사람들이 심폐소생술과 응급 처치를 숙지해 집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심정지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응급 처치 교육 현실은 A 군의 사례와 다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전국 고교 응급 처치 교육 실태 현황’에 따르면 고교 재학 중 응급 처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1명만 응급 처치 절차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응급 처치 순서만 알고 있는 비율은 56.4%, AED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는 비율은 24.5%였다. 전국 고교 내 응급 처치 교육 실시율은 90%가 넘지만 실제 심정지 환자를 마주했을 때 적절한 처치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 심정지 환자는 연간 3만명이 넘지만, 일반인이 심정지 목격 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비율이 2020년 기준 26.4%에 불과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심정지 발생 후 4분 내 응급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면 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심각한 뇌 손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응급 조치가 1분 늦어질 때마다 환자 생존율은 7~10%씩 낮아진다. 하지만 4분이라는 골든 타임 내 심폐소생술 및 AED를 사용하면 환자 생존율을 80%까지 높일 수 있다.
지난 5월 수난구조대원 김세훈 씨는 자전거 충돌 사고로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AED로 응급 처치를 실시해 생명을 구했다.
김 씨는 구급대원 출신의 베테랑 구조대원이며 사고 직후 인터뷰에서 응급 상황 발생 시 주변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심폐소생술과 AED 사용법은 어렵지 않다”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익혀두면 누구나 심정지 응급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8월을 맞아 더위를 피해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한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다. 휴가철과 맞물려 심정지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을 익혀두는 게 중요하다.
오세일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ㆍ강시혁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2006~2013년 서울 등 6개 광역시에서 급성 심정지 환자 5만318명을 분석한 결과, 여름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심정지 발생률이 1.3%씩 증가했다.
◇심폐소생술과 AED 사용법 숙지해야
평소 기본 수칙을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심정지 상황에 대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2020년 개정된 최근 한국형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이 알려주는 심폐소생술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
①심정지 환자 발견 시 119에 신고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AED를 요청한다.
②가슴 압박은 영아(0~1세)는 4㎝, 소아(2~7세)는 4~5㎝, 성인(8세 이상)은 5~6㎝ 깊이로 강한 힘을 실어야 한다. 단, 횟수는 분당 100~120회고 중단하는 시간은 10초가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③AED가 준비되면 음성 안내에 따라 행동한다. 119구조대가 도착하거나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심폐소생술과 심장 충격을 반복 시행한다.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서 가슴 압박과 함께 실시하는 AED는 심정지 환자의 심장 리듬을 자동으로 분석해 소생을 돕는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응급 의료 장비이다.
AED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동하면 된다.
첫째, 환자 상의를 벗긴 후에 장비 내 표시된 그림과 음성 안내에 따라 패드를 환자 가슴에 부착한다.
둘째, AED가 환자 심전도를 분석해 심장 충격이 필요하다면 음성 안내 후 장비가 자동으로 심장 충격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핸즈 오프(hands-off) 타임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에는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고 환자에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 생존ㆍ회복 가능성이 줄어들기에 미국심장협회(AHA)는 핸즈 오프 타임을 10초 이내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셋째, 핸즈 오프 타임 후 심장 충격을 실시하라는 음성 지시가 나오면 오렌지 버튼을 눌러 심장 충격을 가한다. 이후 즉각 가슴 압박을 재개한다. 장비가 심장 충격이 필요하지 않다고 분석해도 가슴 압박을 계속한다. AED는 2분마다 환자 심전도를 분석해 심장 충격 필요성을 안내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