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칩 쿠키의 역사
얼마 전 상호에‘원조’가 붙은 순댓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어찌하여 원조임을 굳이 강조하게 되었을까? 사연이 궁금했지만 순댓국을 먹고 나니 호기심이 사라져 묻지 않고 그냥 나왔다. 맛이 있어서 원조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맛만 있으면 굳이 원조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믿는다.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어딘가에서 가지를 쳐 나왔지만 더 잘하는 음식점도 있다. 반면 실제로 먹어보면 원조라는 이름값에 비해 맛이며 접객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이 겪어 보았다. 물론 가짜 원조가 넘치는 세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음식의 상징성이 강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사적인 가치부터 상품화 기회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하므로 원조 논란은 곧 분쟁으로 비화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햄버거이다.
세계적인 음식으로서 최고의 상징성을 지닌 햄버거는 미국에서도 위스콘신과 오하이오, 코네티컷주가 각각 원조라고 주장한다. 입지를 굳히기 위해 축제 또는 기네스북 등재를 위한 ‘세계에서 가장 큰 햄버거 도전하기’ 등을 주최한다.
그런 가운데 어떤 주도 확실하게 원조 타이틀을 가져가지 못하는 이유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음식과 관련된 사료가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해 기원을 정확하게 짚어 주지 못한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지만 어떤 것도 완벽한 권위 및 제반 사료를 갖추지 못한다. 음식의 역사를 다루는 이 칼럼에서도 가장 그럴듯하다고 공감대가 형성된 이야기를 소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 가운데 기원이 시원하고도 확실하게 알려진 음식이 하나 있으니 바로 초콜릿칩 쿠키이다. 왠지 초콜릿칩 쿠키라면 백화점이나 전문 매장 등에서나 사 먹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편의점과 마트에서 팔리는 대량생산 제품으로 초콜릿칩 쿠키를 접해 왔다. 맞다, 그런 초콜릿칩 쿠키도 사실은 하나의 뿌리에서 가지를 뻗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삶의 일부로 편입한 것이다.
초콜릿칩 쿠키의 날인 5월 15일을 맞은, 사람으로 치면 올해 여든다섯 살이 된 과자의 사연과 레시피를 살펴보자.
초콜릿칩 쿠키의 탄생 비화 이야기는 193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스와 케네스 웨이크필드 부부가 보스턴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메사추세츠주 휘트먼 인근의 작은 여관을 매입한다. 1709년에 지어졌으니 당시의 기준으로도 아주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그러니까 마차로 여행을 했던 시절의 유산이었다. 명칭은 여관이었지만 숙식이 모두 제공되었으니 민박집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숙박 양식이었다.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민박집이 여행의 통행세도 받곤 했으므로 웨이크필드 부부는 ‘요금소 여관(Toll House Inn)’이라는 상호를 붙이고 영업을 했다.
영양사이자 요리 연구가였던 루스 웨이크필드는 모든 음식을 직접 준비했고, 톨 하우스 여관은 곧 지역 및 여행자의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특히 웨이크필드의 전문 분야는 초콜릿칩 쿠키의 탄생에서 짐작할 수 있듯 디저트였다. 오늘 소개하는 것처럼 웨이크필드가 초콜릿칩 쿠키를 발명한 건 확실하지만, 탄생 비화만큼은 많은 다른 음식 이야기처럼 불명확하게 구전되어 왔다.
몇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가운데 핵심은 우연을 통한 극적 요소의 강조이다. 웨이크필드가 버터쿠키 반죽에 초콜릿칩을 우연히 쏟은 덕분이라거나, 원래 다진 초콜릿을 써야 되는 레시피에 초콜릿칩을 써 오늘날과 같은 쿠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 연구가 캐롤라인 와이먼의 저서 ‘위대한 미국의 초콜릿칩 쿠키(The Great American Chocolate Chip Cookie)’에 의하면 웨이크필드의 쿠키는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우연의 산물이든 아니면 치밀한 연구의 결과물이든, 초콜릿칩 쿠키는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오븐에서 한 번 가볍게 녹았다 굳은 초콜릿칩의 촉촉함과 부드러움 덕분이었다.
웨이크필드는 초콜릿칩 쿠키의 레시피를 다듬어 1938년 요리책에 실었고, 곧 라디오 등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대공황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팍팍하던 미국인들에게 초콜릿칩 쿠키는 큰 위안을 안겨 주었다. 비싸지도 않고 단 한두 입에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쿠키는 오늘날로 치자면 디저트가 안겨주는 ‘소확행’의 좋은 본보기로 자리 잡았다.
초콜릿칩 쿠키는 곧 이어진 2차 세계대전에서도 참전병들의 위문품에 꼭 포함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초콜릿칩 쿠키만은 미국인 가정의 오븐에서 구워졌다.
그런 가운데 1939년 3월 20일, 웨이크필드는 쿠키의 레시피와 톨 하우스 상호의 권리를 초콜릿칩 제조회사인 네슬레에게 판다. 사실 말이 좋아 판 것이지 가격은 단 1달러였으며, 기록에 의하면 사실은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루스 웨이크필드는 평생 초콜릿칩을 무료로 제공받았으며 네슬레에 자문역으로 일을 했다. 오늘날도 한결같이 초콜릿칩의 포장 뒷면에 나오는 쿠키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1966년, 루스와 케네스 부부는 톨 하우스 여관을 팔고 은퇴한다. 이후 여관의 팔자는 기구했다. 팔린 직후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어 운영되다가 1970년, 또다시 팔려 원래의 여관 및 음식점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엄청나게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1984년, 화재로 전소되고야 말았다.
80여 년 전에 발명된 초콜릿칩 쿠키 레시피의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원조 레시피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상업 및 가정 요리사의 실험을 거쳐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나 또한 가정 제빵사로서 지난 20년 가까이 수많은 초콜릿칩 쿠키 레시피를 시험해 보았는데, 그 가운데 최고라고 믿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국내에도 ‘푸드 랩(Food Lab)’이라는 요리책으로 번역 소개된 J. 켄지 로페즈 알트가 개발한 레시피이다.
원조에 비하면 훨씬 길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레시피도 지난 80여 년 동안 복잡하게 변해 온 세상을 반영한다. 버터는 완전히 녹여 수분을 날려 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유당을 캐러멜화시켜 더 진한 맛을 이끌어 낸다. 한편 쿠키 반죽은 맛이 더 깊어지도록 냉장고에서 적어도 하룻밤 숙성시켜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시킨다. MIT에서 건축을 전공한 로페즈 알트가 수많은 실험을 거쳐 다듬은 이 레시피는 지난 시간 동안 변화한 요리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사소하다 싶은 일상 음식이라도 과학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아 개선시켜 앞으로 나아가고야 마는 세계관 말이다. 요리를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두 레시피의 차이를 한 번쯤 읽으며 느껴 보기를 권한다.
■톨하우스 원조 초콜릿칩 쿠키
준비물: 중력분 340g, 베이킹소다 1작은술, 소금 1작은술, 버터 225g(부드러워지도록 상온에 둔다), 백설탕 150g, 흑설탕 150g, 바닐라 1작은술, 계란 2개, 초콜릿칩 315g
① 오븐을 190도로 예열한다. 대접에 밀가루, 베이킹소다, 소금을 담아 잘 섞는다. 다른 대접에 버터와 백설탕, 흑설탕을 더해 거품기로 마요네즈와 비슷한 질감이 될 때까지 휘저어 섞는다. 계란을 1개씩 깨서 더해 잘 섞어 준다.
② 밀가루를 더해 완전히 섞은 뒤 초콜릿칩을 더해 가볍게 아울러준다. 반죽을 1큰술씩 떼어 제과제빵팬에 가지런히 올린 뒤 오븐에 넣어 노릇해질 때까지 9~11분 가량 굽는다. 식힘망에 올려 완전히 식힌 뒤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