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외환 60% 이상 미국·유럽 은행 보관, 제재 시작되자 와르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최대 6400억 달러(2월 기준)로 추정된다. 중국과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만 해도 러시아 정부는 물론 서방 외신들이 러시아가 각종 제재에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것으로예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 중앙은행 거래 차단 등 서방의 제재가 시작되자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30% 이상 급전직하하고 러시아는 극심한 외화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왜일까.
1일 외신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시장에서는 탄탄해보이던 러시아의 대비 태세가 예상보다 허술했다는 평가를 내놓
고 있다.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의 마이클 번스탬 연구원에 따르면 총 6,310억 달러의 러시아 보유 외환 가운데 러시아 중앙은행에 예치된 규모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50억 달러 수준이다. 60% 이상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 금융기관에 예치된 상태로 자산동결 등 각국 정부의 제재가 시작되자 꼼짝없이 해외에 묶이게 됐다는 것이다.
번스탬 연구원은 외환의 해외 보관은 러시아 수출입 거래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면서도 이로 인해 상당수 러시아 외환이 국제 제재에 그대로 노출돼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미국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동결한 바 있다.
게다가 러시아에 있는 외환 가운데서도 달러화는 120억 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국 국채(840억 달러)와 금
(1,390억 달러)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 국채는 매각해도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뾰족한 수가 못된다는 분석이다. 또 제재 여파로 러시아와 금 거래에 선뜻나설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러시아가 손에 쥔 외환 실탄은 전체의 2% 남짓한 120억 달러에 불과한 셈이다. 여기에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현재 보유한 241억 달러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 금융시장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사실상 붕괴 상태에 빠졌다.
<조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