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급락, 안전자산으로 머니무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글로벌 자산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급락하는 가운데 안전자산과 원자재로 급격한 ‘머니 무브’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정학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벼랑 끝 전술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시장의 초긴장 상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폭격 맞은 증시…주요 지수 ‘뚝’
22일 뉴욕증권거래소 다우존스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482.57포인트(1.42%) 하락한 3만 3,596.61로 거래를 마쳤다. 이외에도 S&P500지수는 전장보다 44.11포인트(1.01%) 떨어진 4,304.76으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66.55포인트(1.23%) 밀린 13,381.52로 장을 마감했다. 특히 이날 S&P500 지수는 연초인 1월 3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 대비 10% 아래로 처음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조정장세에 진입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 악재를 키웠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연설에서 러시아와 관련해 처음으로 ‘침공’(invasiong)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며 “러시아는 더 이상 서방에서 새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고 미국은 물론 유럽 시장에서도 새로 발행한 국채를 거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를 앞두고 러시아는 물론이고 주요국 증시도 대부분 하락세를 보였다. 러시아 모스크바거래소의 RTS 지수가 21일 13.21%로 두자릿수 하락한 가운데 같은날 독일 DAX30 지수가 2.07%, 프랑스 CAC40 지수도 2.04% 급락했다.
코스피 지수가 1.35% 하락하는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도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글로벌 증시를 폭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자산 머니무브…국제유가 ‘급등’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금은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의 경우 이날 뉴욕상품거래소 4월 인도분 기준 7.6달러(0.4%) 오른 1,907.4달러 마감했는데 이는 지난해 6월 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달 초 온스당 1,800달러 선을 나타냈던 금 가격은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무려 온스당 100달러 이상 급등했다. 투자자문회사 레이먼드 제임스의 에드 밀스 애널리스트는 “위험자산 회피 심리는 당분간 고조될 수 있다”며 금의 추가 상승을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수급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이는 원유의 경우 가격 상승세가 더 거세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4월물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99.5달러까지 치솟아 100달러 선을 넘보기도 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출 제재를 당할 경우 국제 원유 공급이 감소해 유가에 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다.
이와 관련해 무디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밀과 각종 금속을 비롯해 다른 원자재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건 원유”라며 “우크라이나 갈등은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 갈등에 연준 고민 커져
우크라이나 갈등은 결과적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증시 부진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제 성장세에 충격을 줄 정도가 되면 연준이 긴축을 서두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최근 가능성이 점쳐졌던 연준의 3월 0.5% 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은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 브루스 카스만은 “경기 둔화를 고려하면 금리인상 속도를 늦춰야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연준 입장에서는 선택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