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제롬 파월 의장 유임 결정 배경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RB·연준) 의장에 제롬 파월 의장을 유임한 것은 팬데믹을 벗어나는 경제회복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가뜩이나 하락세인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할 수 있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파월 의장의 상원 인준이 수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유임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파월 의장을 유임하고 부의장에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를 지명하는 성명을 내면서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 우리가 있던 곳으로 그저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경제를 더 낫게 재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파월과 브레이너드가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최대 고용을 가져오는 데 초점을 맞춰 우리의 경제를 전보다 더욱 강력하게 만들 것이라는 데 자신감이 있다”면서 연준의 안정성과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한편 파월 의장 유임을 통해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브레이너드 부의장 임명으로 정책 밸런스
특히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물가안정이 당면 과제다. 바이든 대통령과 파월 의장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공급난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규정해왔으나 최근 들어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월스트릿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파월 의장의 대응에 달려있을 수 있다고 짚기도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분점하고 사안마다 대립하는 상원에서 파월 의장의 인준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전망도 유임 배경으로 꼽힌다.
공화 성향 인사인 파월 의장은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을 때 상원의원 100명 중 84명의 지지를 받아 인준됐다. 84명 중 68명이 여전히 상원의원직을 지키고 있으며 양 당에 비슷하게 양분돼 있어 이번에도 인준 과정에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연준 의장직은 유임이 흔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닛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을 유임시키지 않고 파월로 교체했지만 벤 버냉키, 폴 볼커 등은 유임했고 앨런 그린스펀의 경우 18년간 연준 의장 자리를 지켰다.
연준 의장 후보로 꼽히던 브레이너드 이사를 부의장에 지명한 것을 두고서는 파월 의장이 기후변화 대응과 금융규제에 소극적이라는 진보 진영 일각의 비판을 감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의 지난 4년은 이례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2018∼2019년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 않으며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대통령의 계속되는 공개 타박에 상원 공화당 의원들이 “계속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달라”고 파월 의장을 격려할 정도였다.
작년 3월부터는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사태에 직면해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이달부터는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에 들어가며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건 상태다.
■‘물가와 고용’ 두마리 토끼 잡아야
파월 의장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월스트릿저널은 “파월 의장은 2기 때 매우 다른 경제 환경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물가 상승률이 계속 높다면 경기침체와 정치적 역풍을 무릅쓰고라도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축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초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해 주식, 주택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한 상황이라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취약한 구조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상화폐의 폭발적 성장 역시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금융 규제나 감독 강화와 맞물린 문제이지만, 파월 의장은 그간 민주당의 진보 성향 의원들로부터 금융 규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이 주식이나 다른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의 부를 키우며 소득 불평등을 심화했다는 비판 역시 파월 의장으로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