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도 않나요(Have you no shame)?”
조 바이든 대통령이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투표권 제한을 추진 중인 공화당을 겨냥한 직격 발언이었다. 그는 또 지난해 11월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여전히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서는 ‘큰 거짓말’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2022년 중간선거를 1년 반 앞둔 상황에서 본격적인 정치 기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3일 미국 독립선언과 헌법 제정의 역사적 현장인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찾았다. 그는 국립헌법센터에서 연설을 하며 “우리는 남북전쟁 이후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늘 미국에서 투표권과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억압하고 전복하려는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주의와 자유와 우리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결과 불복은) 정치적 수완이 아니라 이기심”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공화당이 각 주에서 추진하는 투표권 제한 법안과 관련, “21세기의 짐 크로법”이라는 표현도 썼다. 짐 크로법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흑인을 차별했던 법률을 뜻한다.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조지아 등 12개 주에서는 투표 시간 제한, 우편투표 신원 확인 강화 등을 담은 법안이 통과됐다. 민주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흑인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막기 위한 조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선거와 신성한 투표권을 훼손하려는 일치된 노력을 막는 데 도움을 달라”며 “(공화당은)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일갈을 날렸다.
텍사스주 의회에선 투표권 제한 법안이 상정되자 민주당 주의원들이 12일 전세기를 빌려 수도 워싱턴으로 도망가는 초유의 상황도 빚어졌다.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공화당에 맞서 의결정족수(정원 3분의 2)를 채워주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텍사스 주법상 의원들이 주 경계 안에 있을 경우 강제 복귀 명령에 따라 체포될 가능성도 있었다. 민주당 주의원들은 이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여론전을 점화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투표권 싸움 전망은 밝지 않다. 민주당은 연방 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권을 확대하겠다며 법안 2개를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이 지난달 상원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사용해 가로막은 상태다. 텍사스주 역시 계속 회기를 연장해 투표권 제한 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