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은사이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장’ 토미 라소다 감독의 별세 소식에 MLB 구성원들은 애도의 뜻을 보냈다.
1927년 9월 23일생인 라소다 전 감독은 현지시간으로 2021년 1월 7일 영면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라소다 감독은 최고의 감독이었다”며 “그의 열정, 카리스마, 유머 감각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한층 성장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라소다 감독은 한국, 일본,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을 융화시켰고, 다양성 측면에서 MLB를 성장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게는 은사이자 양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라소다 전 감독은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를 지도하며 남다른 인연을 쌓기도 했다.
MLB 투수로서 통산 124승을 달성한 박찬호는 자신을 물심양면 지도한 라소다 전 감독을 양아버지로 여겼다.
박찬호는 작년 6월 미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할아버지뻘인 라소다 감독은 마치 동년배처럼 친구같이 대해줬다”고 회고했다.
박찬호의 회고처럼 라소다 전 감독은 MLB 선수 시절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열정적 리더십과 선수들과의 스스럼없는 소통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감독 시절 마이너리그의 많은 선수를 발굴해 메이저리거로 키워내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9명이나 배출했다.
라소다 감독과 경쟁했던 토니 라루사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도 “라소다 감독은 위대한 소통의 지도자였다”며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야구의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훌륭한 리더이자 전략가였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라소다 감독의 별세 소식을 듣고 매우 슬펐다”며 “야구계 거장 라소다 감독은 훌륭한 선수였고, 감독이었고, 야구 홍보대사였다. 그의 에너지 넘쳤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현역 시절 라소다의 경력은 별 볼 일이 없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최다 탈삼진 기록도 세우면서 제법 괜찮게 던지는 투수였다고 하지만, 정작 메이저리그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통산 성적이 4패, 평균자책점 6.48에 그쳤다.
1960년 다저스에서 마이너로 강등당한 후 방출당하면서 현역 은퇴를 했다.
이후 다저스의 스카우트와 마이너리그 코치를 거쳐 1973년 메이저리그 코치로 합류했다. 그리고 1976년 23년간 감독을 지낸 월터 앨스턴 감독이 은퇴하자 뒤를 이어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이 되면서 그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저스에서만 통산 1,599승을 기록했다. 20년 간 집권하면서 7번 PO에 올라갔고, 이 중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들었다. 1981년에는 뉴욕 양키스를 제압했고, 1988년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꺾었다.
슈퍼스타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은퇴)는 “라소다 감독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며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 감독’ 이상의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