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가을이 쌓여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비 그친 날
똑똑 노크하듯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불러본다
어느 날 불쑥 솔향기로 다가와
막무가내로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던 사람
무모하리만치 외골수였던 사랑과 철없는 열정은
아픈 쳥춘으로 끝났지만
나에겐 가장 순수하고 빛나는 시절이었다
쇼팬하우어의 인생론을 이야기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눈 가장자리에 머물렀던 가을 햇볕
한 잎 외로운 철학도를 통해 꿈을 꾸듯
문학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뼈마다가 시린 나이듦에 주눅이 들지만
시간을 가두어 둔 세월 저 편엔
아직도 녹슬지 않고 반짝이고 출렁이는 내가 서 있다
뒷뜰 나무들은 콘트라베이스의 낮은 음을 들으며
오랜 기다림을 시작 하는데
그의 눈 가장자리에 머물렀던 가을 햇볕은
잊고 있던 꿈의 조각들을 물고 온다
오늘 그는 어디에서
황혼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