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전 부통령(77)은 버락 오바마(59) 전 대통령과는 미국 정치 역사상 최고의 ‘브로맨스’를 자랑했다. 흑인 대통령과 백인 부통령. 백인이 늘 우위를 차지하던 권력의 서열을 단숨에 전복시킨 두 사람은 그 자체로 새로운 미국의 희망이었고 위대한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은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게 달랐다. 나이 차이도 크고, 성격마저 극과 극이었다. 꼭 필요한 말만 묵직하게 던지는 철두철미한 ‘내향적 학구파’ 오바마와 달리 바이든은 계산 따위 없이 감성 넘치는 ‘외향적 문학도’이자 떠버리 수다쟁이였다. “세상에 그 양반 정말 말이 많더군.” 2005년 초선의원이던 오바마가 32년 베테랑 의원이었던 바이든의 쉴 새 없는 연설을 보고 혀를 내둘렀던 게 첫 만남이었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상극이었지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바로 진실함이다. 바이든은 ‘겉과 속이 같은’ 그야말로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30년 넘게 정치판에서 구른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격의 없는 소통에 바이든은 ‘짜증 없고, 악의 없고, 증오심 없는 트럼프’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것도 비슷했다.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대신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낙점한 건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서다. 임기 초반 바이든의 숱한 말실수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오바마가 재선 이후 바이든을 놓지 않은 이유다.
아슬아슬한 갈등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으로 문제를 풀어 나갔다. 바이든은 처음부터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는 부통령의 역할은 사절했다. 역대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를 대비한 ‘대체인력’에 불과했다. 바이든은 그 이상을 원했다. 중요한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대통령과 매주 오찬을 하며 수석 고문으로 국정 전반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권력을 공유하는 일. 지나치다고 느낄 법한 요구였지만 오바마는 흔쾌히 수락했다.
바이든은 종횡무진 활약했다.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을 3번이나 역임할 만큼 ‘외교통’이었던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지속적으로 조언하며 오바마의 외교안보 교사를 자처했고, 정치적 경륜과 특유의 친화력을 무기로 공화당 의원들과 초당적 협력도 이뤄 냈다.
하지만 8년의 브로맨스가 무색하게 오바마는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이 아닌 힐러리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본선 경쟁력에서 더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오바마는 정치적 미래 앞에서 냉철했지만, 바이든에겐 상처였다. 그러나 4년 뒤 바이든은 3수 끝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결국 거머쥐고 부통령이 아닌 대통령의 자격으로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