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항의시위가 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봉쇄 해제ㆍ경제 재개’에도 제동이 걸렸다. 거리두기가 어려운 밀집된 시위 현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를 키우는데다 폭력시위로 인한 영업장ㆍ관공서 폐쇄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일 오후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전날보다 2만 명 가까이 늘어난 187만3,700명이었다. 누적 사망자는 전날 대비 916명 증가한 10만7,841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6일부터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7,000명대까지 낮아졌던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새 1만2,000여명으로 급증하더니 이후 매일 2만명을 넘고 있다. 일일 사망자 수도 같은 기간 230여명에서 한 때 1,500여명까지 치솟았다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700명 안팎이다.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확산세의 진원지로 이번 시위 현장을 꼽는다. 윌리엄 셰프너 밴더빌트대 의학센터 감염병 전문가는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강하게 숨을 내쉬는 시위 현장에서 무증상 감염자들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찰의 최루가스와 최루액 분사기 사용 과정에서 시위대가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현상도 확산 가능성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스콧 고틀리브 전 연방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대규모 집회가 코로나19 확산에 불을 붙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겨우 고비를 넘기는가 싶던 코로나19가 재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시위 때문에 앞으로 2주간 감염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사학자인 하워드 마르켈 박사는 “1918년 필라델피아와 디트로이트 등에서 전쟁비용 모금을 위한 대규모 행진이 스페인독감을 확산시켰다”고 경고했다. CNN방송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인종 간 코로나19 피해에 차이가 있음을 들어 “흑인들이 시위에 대거 참여해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규모 항의 시위와 코로나19 확산세가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진행되던 봉쇄 해제 움직임이 곳곳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대형마트 타깃을 비롯해 유통업체 월마트,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 영업점, 대형약국 체인 CVS 등이 전국적으로 일시 폐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아마존도 LA, 시카고, 시애틀 등지에서 배달 영업을 중지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모든 도심의 주정부 건물을 폐쇄하기로 했다.
봉쇄 완화ㆍ경제 재개를 서둘렀던 트럼프 정부에겐 특히 수도 워싱턴의 상황이 부담이 될 듯하다. 워싱턴 보건부는 “추가 완화 조치로 가기 위해선 14일간 감소세가 나타나야 하지만 최근 확산세를 보이고 있어 2단계 완화 조치를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부터 50개 주 전체에서 이동 제한을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등 봉쇄 조치 완화에 돌입한지 약 2주만에 다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