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가에 제재 완화·빈곤국에 대한 부채 감축·분쟁 중단 언급
“무관심·분열·태만 버리고 단합해 위기 극복해야”…EU 분열 경고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인 1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세계적 위기 속에 모든 국가의 연대와 상호 지원을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주례하고서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틴어로 '로마와 온 세계에'라는 뜻) 강복 메시지를 통해 이같이 호소했다.
교황은 "전 세계가 고통받는 전염병에 맞서 하나로 뭉쳐야 하는 지금 무관심은 설 자리가 없다"며 "무관심과 자기중심적 사고, 분열, 태만 등은 지금 우리가 듣길 원하는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단어를 영원히 버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세계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도 인류가 다 함께 이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상호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부 국가들을 겨냥해 취해진 국제적인 제재 완화와 빈곤국에 대한 부채 감축, 시리아를 비롯한 곳곳에서 진행 중인 분쟁 중단, 이주민·난민 등에 대한 지원 등을 언급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대응책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유럽연합(EU)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단합을 호소하기도 했다.
교황은 "EU는 현재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며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다"고 짚었다.
EU가 현재의 갈등 국면을 조속히 수습하지 못한다면 붕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EU는 역내 바이러스 최대 피해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스 등이 요구하는 공동 채권, 이른바 '코로나 본드' 발행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대립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희생자를 비롯해 이번 사태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애절한 위로도 잊지 않았다.
교황은 "올해는 전염병이 야기하는 슬픔과 고난 속에 '고독한 부활절'이 됐다. 육체적 고통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어 "환자와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경우에는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유족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부활 대축일 미사는 사상 처음으로 신자 참석 없이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장에는 소수의 사제들과 작은 규모의 성가대만 함께 했다.
예년 같으면 수만명의 신자와 순례객들로 가득 찼을 성베드로대성당과 광장은 텅 비어 황량한 분위기였다. 네덜란드에서 공수되는 튤립 등 각종 꽃장식도 사라졌다.
교황은 통상 성베드로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많은 인파가 운집한 광장을 내려다보며 강복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날은 중앙 제대 앞에 외로이 홀로 선 채로 준비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부활대축일은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축일이다.
하지만 바티칸과 이탈리아 현지는 환호와 기쁨 대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걱정과 우려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난달 초부터 발효 중인 전국 이동제한령과 식당·상점 등의 폐쇄 조처로 거리엔 사람 그림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현지 언론들은 "역사상 가장 쓸쓸한 부활절"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