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가발과 잘 팔리는 물건을 주문하고 김규환씨네 물건까지 주문해놓고 상점에 필요한 진열대와 테이블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아내와 내가 손과 발에 멍이들고 피를 흘리면서 만든 상점은 그런대로 훌륭했다.
쇼윈도우도 멋이 있다. 김규환씨 부부가 와서 보고 놀랄 정도였다. 시청에 찾아가 영업허가를 내는데 너무나 친절했다. 신청서도 직접 써 주고 즉석에서 영업허가증을 해 준다. 한국에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든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뉴욕에서 물건이 도착해 마네킹에 가발을 씌우면서 정리를 하는데 처음이라 앞뒤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쩔쩔맸다. 친구가 신경을 써서 보낸 물건들과 잘 팔리는 각 가지 가발들을 모두 다 정리해놓으니 그럴듯 하다.
Dublin 소도시에서는 최고로 크고 멋진 가발가게의 탄생이다. 예감이 좋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손님들이 언제 문을 여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안하고 걱정이 많이 됐다. 과연 장사가 잘 될까! 무모하게 미국의 실정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채 시작한 장사인 동시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큰 미국에서 시작한 모험이라 불안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Downtown Wig이라는 상호를 달아놓고 지역 신문에 신장개업이라는 광고를 내면서 상점의 문을 열었는데 손님들이 찾아와 가발을 사면서 “이렇게 많은 가발을 처음 보았다” 며 친구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하며 기뻐했다. 아내와 나는 꿈만 같고 신바람이 났다. 장사는 계속 잘 됐고 토요일은 손님이 많아 정신없이 바빴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아 우리도 상점문을 닫고 미국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보는 여유가 생겼다. 다행히 우리가족 밖에 없는 동양사람을 교인들이 친절히 환영하고 도와주었다. 예배가 끝난 후엔 가족들과 함께 쇼핑도하고 외식도 하면서 즐겁고 안정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장사를 해보니 직장생활보다 몇 배 이상 수입도 좋고 훨씬 편했다. 학교행사때와 PTA 모임도 참석할 수있는 여유도 생겼다.
Baltimore에서 함께 내려와 Waycross에서 장사를 하는 김규환씨 집은 2시간 거리다. 주말에는 그곳으로 가 함께 회포를 풀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 생긴 Winn-Dixie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계산대에 줄을 서 있다가 뜻밖에 한국사람 같은 동양사람을 보고 아이들이 한국사람 같다고 조잘댔는데 그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자기는 이곳 제대군인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이곳으로 이사를 왔냐고 물어 “예. 이곳 Downtown에서 가발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그럼 저 먼저 가겠습니다.”
계산이 끝난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동포에 대한 관심과 친밀감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무척 서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