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이 원정출산 여부 판단…의료 목적 방문시 재정능력 증명해야
실무상 "판단 쉽지 않다" 지적도…재선 앞둔 트럼프 또 '반이민' 기치 드나
미국 정부가 23일 관광비자 발급 심사를 강화함으로써 '원정출산'을 제한하는 새로운 비자 규정을 내놓았다.
국무부가 마련한 규정에 따르면 원정출산을 주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우 관광용인 'B 비자' 발급 요건에서 허용할 수 없는 이유로 분류된다. 이 규정은 24일부터 적용된다.
영사관은 비자 신청자가 원정출산을 주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 비자 발급을 거부하도록 했다.
또 의학적 필요에 의해 미국을 찾는 임신부는 교통비와 생활비를 포함해 치료에 필요한 의료비를 충당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로이터통신은 임신부가 비자를 신청할 경우 의료적 필요성 등 출산 이외의 구체적 이유를 증명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임신부들이 원정출산이 아니라 의학적 필요로 미국을 방문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넘어서기 어려운 더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정출산이란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제도를 노리고 비(非) 미국인 임신부가 관광비자로 미국을 방문한 뒤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8만달러를 내면 호텔과 의료비를 제공하겠다고 광고할 정도로 미국 안팎에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 통하고, 러시아와 중국에서 많은 임신부가 원정출산을 오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한국 역시 원정출산이 이슈화되기도 했다.
이민 규제 강화를 주창해온 이민연구소는 2012년에 3만6천명의 임신부가 미국에서 원정출산을 했다고 추산한 바 있다.
국무부는 "아이의 시민권 획득을 주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즐거움이나 오락적 성격의 합법적 활동이 아니다"라며 "이 규정은 원정출산 산업과 관련된 범죄행위를 제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反) 이민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출생시민권을 손보겠다고 해온 공언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나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낳은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권리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위헌 시비와 반론에 막혀 시행하진 못했다.
이번 방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주초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이지리아, 미얀마 등 7개국가량의 입국금지 대상 추가 검토와 맞물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 표심을 얻기 위해 '반이민' 정책 기치를 다시 내걸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도 평가된다.
다만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출생시민권 제도 자체의 손질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비자 심사를 강화하더라도 실무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사관은 비자 심사 때 여성이 임신했는지, 또 임신할 의향이 있는지 물을 권리가 없어 임신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관광 목적인지, 출산 목적인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