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경기 침체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은 이미 마이너스 국채 금리라는 초강수를 뒀다. 영국이 유럽 연합 탈퇴 시기로 선언한 올해 가을 영국발 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과 무역 전쟁 중인 미국도 협상 결과에 따라 자칫 경제 위기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전국 실물 경제 협회’(NABE)가 최근 경제 전문가 약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2020년과 2021년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 응답이 약 63%를 차지,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도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됐다. 만약 경기 침체가 찾아온다면 주택 시장은 어떻게 될까? 2008년 발생한 주택 시장 침체의 악몽부터 떠오르지만 피해는 당시만큼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이 경기 침체 가능성에 따른 주택 시장 전망을 짚어봤다.
◇ 집값 급락할까
주택 구입을 앞두고 있는 바이어라면 주택 가격이 ‘경기 대침체’ 때 그랬던 것처럼 폭락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주택 가격 폭락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밀레니엄 세대를 중심으로 향후 주택 구입 수요는 급증할 전망이지만 그간 신규 주택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주택 수급 불균형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경기 침체 발생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주택 재고가 더욱 씨가 마를 수 있다.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로 집을 내놓으려는 셀러가 감소하면 주택 재고 수준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택 재고가 감소하면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경기 침체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주택 구입 능력이 하락하면 주택 수요도 어느정도 줄기 때문에 가격 상승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다. 조지 라티우 리얼터닷컴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침체로 주택 가격 정체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하락 가능성은 낮고 주택 거래는 소폭 감소할 수 있다”라고 예측했다.
부동산 시장 자문 기관 마이어스 리서치의 알리 울프 디렉터는 “주택 시장 침체에 대한 악몽으로 주택 거래가 영향을 받겠지만 주택 가격이 50%씩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소폭 하락하는데 그칠 전망이며 주택 가격이 급등한 지역에서 하락폭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에 따른 주택 거래 전망과 관련, 울프 디렉터는 주택 거래 하락폭이 약 10%~20%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 임대료 떨어지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택 임대료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지적되고 있다. 세입자 가구의 ‘등골 브레이커’인 주택 임대료 역시 경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
아파트 시장 분석 업체 리얼 페이지의 그렉 윌렛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침체 발생 시 약간의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임대료 급락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현재 연간 약 3%인 임대료 상승률이 향후 수년간 약 1.5%~2%대로 낮아지는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상승폭만 낮아질 뿐 임대료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주택 임대 수요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주택 구입 결정을 미루고 경제 여건이 안정될 때까지 주택을 임대하려는 수요가 주택 임대 시장으로 몰린다. 주택 시장 침체가 대규모 압류 사태로 번졌을 당시 주택 임대 수요가 폭등하며 주택 임대 시장이 사상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고급 아파트 임대 시장의 경우 경기 침체에 따른 여파가 어느 정도 우려되고 있다. 고급 아파트에 대한 임대 수요가 감소할 경우 ‘무료 임대 기간 연장, 임대료 인하’ 등의 마케팅 전략을 고려하는 아파트 임대 업체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주택 압류 급증할까
경기 침체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직전 경기 대침체가 사상 최악의 주택 압류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당시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집이 압류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고 정든 집을 잃었다는 악몽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주택 시장의 펀더멘털이 과거 대비 견고해졌기 때문에 경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대규모 주택 압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직전 주택 시장 침체 후 금융 감독 기관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모기지 대출 자격 강화다. 이후 내 집을 장만한 주택 구입자들은 까다로운 대출 심사를 통과한 구입자들로 모기지 연체 위험도 매우 낮아졌다.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부실 모기지 비율이 매우 낮다”라며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오르더라도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 가격 상승 덕에 ‘에퀴티’로 불리는 주택 순자산 비율이 높아진 점도 경기 침체에 대비한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에퀴티 비율이 충분해 실직 등으로 모기지 페이먼트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도 과거처럼 숏 세일, 압류 등의 방식으로 주택을 급매해야 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리스팅 가격을 시세보다 조금만 낮춰 가격 경쟁력만 갖추면 급매 방식을 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졌다.
모기지 대출을 끼지 않고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한 비율이 높아진 점도 경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다. 라티우 리얼터닷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모기지 대출 없이 주택을 보유한 비율은 직전 침체 당시 10채 중 3채에서 최근 4채로 늘어났다.
경제 분석 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안드레스 카바초-버고스 주택 시장 부문 선임 연구원은 “현재 주택 압류 비율이 바닥 수준으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압류가 당연히 소폭 증가할 수밖에 없다”라며 “주택 가격 둔화로 리모델링 비용 지출이 감소하고 플리핑 투자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규 주택 공급 중단될까
신규 주택 공급 부족이 현재 주택 시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주택 건설 경기 위축으로 신규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주택 건설 업계의 불황 현상은 이미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 주택 건설업 협회’(NAHB)의 로버트 디에츠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신규 분양 시 가격 인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분양 업체가 지난해 약 10%에서 올해 약 40%로 증가했다.
무역 전쟁으로 인해 철근과 같은 건축 자재비가 급등한데다 강력한 이민 정책 시행으로 건설 업계 인력난이 심각해져 신규 주택 분양 가격이 상승한 결과로 분석된다. 디에츠 이코노미스트는 “일부 지역의 주택 신축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신규 주택 판매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준 최 객원기자>
경기 침체가 발생해도 집값 급락 가능성은 매우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