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통해 다른 문화 만나는
앤서니 보댕의 추종자들
하와이 포이·터키 코코레트시…
진기한 전통음식 체험 묘미
러시아 극동지역의 외딴 해안 마을에 사는 추크치 족은 지금도 상아를 끝에 박아 만든 작살로 바다코끼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동네를 찾은 방문객에게 갓 잡은 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전통의식이다.
“거절을 할 수가 없어요.”
일 년이면 몇 번씩 그 지역에 정박하곤 하는 실버시(Silversea) 크루즈의 마케팅 부장인 바바라 먹커만은 말한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과거 해외여행에 나선 미국인들은 외국의 산해진미들을 의혹에 찬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래서 식사 때면 호텔이나 크루즈로 황급히 돌아와서 집에서 먹던 것 비슷한 별 맛없는 음식들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여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중 음식을 통해 다른 문화를 접하려는 관광객이 점점 늘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올리브유에서 하와이의 토란요리인 포이, 터키의 양내장 샌드위치인 코코레트시 등의 요리들이다.
오늘날 여행객들은 말하자면 ‘앤서니 보댕 복음’의 추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역 전통음식들을 찾아서 세계를 누빈 보댕의 발자취를 쫓는 이런 시도는 보통 소규모의 독립 여행사들, 종종 약간 괴짜 여행사들이 주도한다.
이들은 보통 현지에 뿌리가 있어서 꽃가게 안에 숨어있는 두부 요리전문점이나 자기 거실에서 월남국수를 파는 동네 아줌마 맛집 등을 찾아 안내한다.
그런데 이제는 국제적 대기업들이 이들 맛집 관광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모나코에 본부를 둔 실버시. 20억 달러 규모의 이 기업은 최근 세계 제2의 크루즈 선인 로얄 캐리비언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실버시 크루즈는 올 여름 진수 예정으로 승객 596명을 태울 수 있고, 클럽하우스 두배쯤 되는 시험 주방을 갖춘 요리여행 크루즈 선을 건조 중이다.
미식 관광의 까다로운 부분은 위생에 민감하고 낯선 것에 불편한 관광객들을 어떻게 현지의 독특한 음식들을 체험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지의 맛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방콕의 게살 오믈렛 전문점인 라안 제이 파이(Raan Jay Fai)는 미슐렝 별 자리 식당으로 선정되었다. 그러고 나자 그 게딱지만한 식당에 요리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많게는 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주인은 돈방석에 앉은 것은 좋지만 할 수만 있다면 미슐렝의 별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주인이 기름이 튀는 것을 피하려 스키 고글을 쓰고 혼자 직접 오믈렛을 만드는데 손님이 밀리니 여간 힘든 게 아닌 것이다.
맛집 여행 혹은 미식관광은 한동안 유행할 조짐이다. 세계 음식여행 협회의 2016년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휴가객의 93%는 ‘음식 여행객’이다. ‘미식탐험’에 대해서는 과거 제국주의자들이 다른 문화권 문물들을 수집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하던 행태와 비슷하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입을 벌리면 마음도 열린다” 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만두 한 바구니가 역사적 기념물 못지않게 그 지역의 문화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대학 영양 및 식품학과장인 크리시넨두 레이 사회학 교수는 요리 여행에서 희망을 본다.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맛으로 관계를 맺게 하지요.”
물론 그 음식을 재배하는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에 상관하지 않는다면 음식 자체만의 관심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 현지주민들의 삶의 내용을 느끼게 하려는 관광업자들이 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현지인처럼 먹기(Eat Like a Local)‘라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로치오 바즈케즈 란데타는 지역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여행객들과 상인들 사이의 소득 차이를 인식한다. 현지인들에게 동정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가난한 사람을 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여행객들이 가격을 깎지 말고 정가를 다 내는데 더해 손님들에게 음식 재료며 음식에 관해 설명하느라 쓴 시간에 대해서도 값을 지불하라고 권한다. 그는 상인들의 자녀 6명에게 영어 개인교사를 붙여줬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게 한 후 부모를 돕고, 주말에 여행안내를 돕게 하면서 팁을 준다.
아울러 그는 여행객들에게는 각자 고국의 사진들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아칸소 태생인 모나 보이드는 5년 전 가나의 아카에서 랜드투어스(Landtours)라는 여행사를 설립했다. 작은 그룹 단위로 서아프리카 관광을 하면서 현지 가정에서 가정식을 맛보게 하는 여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식당에 가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판단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는 여행객들이 식사 시간 전에 일찍 해당 가정에 도착해서 같이 요리를 만들면서 현지 주민들을 보다 깊이 있게 알도록 하고 있다. 그런 스스럼없는 환경이 보다 솔직한 문화적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같은 음식 관광에서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관광객들의 안전이다. 제3세계 여행 중 정수되지 않은 물로 씻은 식재료들로 인해 여행객이 병이 날 수도 있다는 점 등 위생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멕시코시티 시장에서 현지 음료를 맛보는 관광객. 방금 짜낸 파인애플 주스에 보드카를 섞은 음료이다. <Sam Youkilis - 뉴욕타임스>
베트남에서 하노이 거리음식 관광을 이끄는 반 콩 투가 여행객들에게 뼈째 구운 메추리 요리 먹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Yen Duong - 뉴욕타임스>
퀸즈의 음식 블로거인 조우 디스테파노가 이끄는 음식 체험관광. 플러싱의 골든 샤핑몰에서 서천 요리 등을 시식한다. <Christopher Lee - 뉴욕타임스>멕시코시티의 ‘현지인처럼 먹기’ 여행사가 안내하는 메뚜기 요리. <Sam Youkilis -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