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를 아시는지? 조금은 생소한 지명일지도 모르겠다. 카스피해와 흑해를 사이에 두고 코카서스 산맥에 자리잡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일컬어 ‘코카서스’ 혹은 ‘캅카스’ 3국이라 부른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거친 산맥 아래 펼쳐진 코카서스는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믿음의 땅이자, 그리스 신화의 영웅 프로메테우스가 발을 디딘 땅이다. 이후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침을 당했던 세 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정체성을 지키며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독립을 알린 코카서스는 최근들어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종교·역사적 문화유산, 푸시킨이 극찬한 맛있는 음식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대표 여행사인 ‘US아주투어’가 최초로 여행 코스를 개발하여 소개하고 있다.
US아주투어의 코카서스 투어팀 전원이 기대 그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코카서스는 터키만큼이나 감동적인 성지순례지였다. 더불어 이태리나 스페인 못지않게 음식도 훌륭했다. 집집마다 유제품을 자급자족해 식탁에 올리고, 비옥한 대지에서 자란 신선한 먹거리들이 건강과 맛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었다. 러시아의 대작가인 푸시킨의 말 “음식이 하나하나 시와 같다”라는 말에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며 코카서스 여행을 최고의 ‘미각 여행’이라 부르고 있다.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코카서스 여행의 관문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의 수도 바쿠다. 이 나라는 코카서스 3국 중 제일 부유하다. 세계 최초로 원유가 발견된 ‘불의 나라’답게 질 좋은 석유가 바쿠 인근과 카스피해에서 생산된다(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를 탐내고 러시아 속령인 이곳을 침공하기도 했다).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메이든 타워, 아제르바이잔 건축의 진주로 손꼽히는 쉬르반샤 샤호프칸 궁전 등이 명소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면 7세기경 커다란 바위 위에 세운 원형 돌탑이 나타난다. 그 유명한 처녀탑이다. 군주의 딸이 사랑 없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탑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처녀탑 부근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인 바돌로매(나다니엘)의 순교지도 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흡사 팥죽과도 같은 진흙이 용암처럼 끓어 오르는 진흙화산과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고부스탄 암각화도 볼 수 있다.
▲신화의 땅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어 조지아(Georgia)에 들어선다. 코카서스 여행의 허리를 담당하는 조지아는 구소련 연방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야’로 불렸다.
무엇보다 조지아는 와인을 처음으로 생산한 나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무려 8000년 전부터 으깬 포도를 황토색 질항아리에 넣고 땅에 묻어 발효시킨 와인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크레브리(Qvevri) 와인’이라 부른다.
첫 방문도시는 시그나기다. 터키어로 ‘피난처’란 뜻의 시그나기는 해발 800m 가파른 산 위에 둥지를 튼 성곽 마을이다. 4㎞ 남짓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마을은 마치 중세시대에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한 인상이다. 골목 안에는 와인이나 카펫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2000명 남짓 되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양식으로 카펫을 짜거나 와인을 만들며 ‘슬로우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또다른 명소는 성녀 니노의 묘 위에 지어진 보드베 교회다. 성녀 니노는 지금의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공주로 태어났으나 전쟁으로 인해 노예로 전락했다. 니노는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기독교를 이 땅에 전파했다. 사후 시그나기 지역에 잠든 성녀 니노는 지금도 조지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지아 최북단, 북쪽으로 러시아와 마주하며 코카서스 산맥 계곡에 둘러싸인 카즈베기로 이동한다. 카즈베기는 코카서스 산맥의 미봉 중 하나인 카즈베기 산과 해발 2,017m 언덕에 세워진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해발 5,047m의 카즈베기 산은 정상 부분이 두꺼운 빙하로 뒤덮여 있어 ‘얼음산’으로도 불린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이력을 가진 므츠게타에서는 4세기경 세워진 스베티츠오벨리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7번째 기둥이 공중에 솟구쳐 올라 내려오지 않았다는 ‘기적의 기둥’으로 널리 알려진 교회다. 예수가 처형당할 때 입고 있던 겉옷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최초의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
마지막 목적지는 아르메니아(Armenia)다.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아라라트 산이 있는 나라,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 매력적인 수도 예레반의 나라다.
앞서 여행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같은 기독교 국가인만큼 사이가 좋다(그러나 한 가지! 와인을 먼저 생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다).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 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삼위일체, 즉 성부·성자·성신을 믿는다. 열두제자 중 바돌로메와 다데오가 이곳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했다.
내륙국가인 아르메니아에는 해발 2,000m 고지대에 세반 호수가 있다.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바다라고 부른다. 주변 경관이 참 아름다운데 특히 용암이 흐르다 물과 만나 급격히 굳어 생긴 지형에서는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다음 목적지는 아라라트 산을 품은 예레반이다. 노아의 방주 신화가 살아있는 곳이자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는 산이다.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가 떠내려가다 이곳에서 멈추었고, 그 배 조각이 이 산에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폭포수를 연상시키는 언덕길 계단과 건축물이 인상적인 케스케이드 꼭대기에 오르면 한국인이 만든 사자상도 볼 수 있고, 창세기 고대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마테나다란 박물관도 유명하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이다 보니 나라 곳곳에 연륜 깊은 수도원과 교회가 많다. 그중에서도 국가가 공인해 세운 최초의 성당인 예치미아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서 첫 손에 꼽히는 성지다. 로마 병사가 예수님이 돌아가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 창,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 나무 일부를 넣어 만든 십자가, 노아의 방주에서 가져온 나무조각이 붙은 십자가 등 기독교사의 귀중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르메니아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전통 음식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라바쉬(Lavash)다. 어린아이 키만한 빵 반죽을 기름 없이 거대한 화덕 안에 던지듯 붙여 구운 빵이다. 반죽과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해 노릇노릇 구운 라바쉬는 모든 음식에 애피타이저로 제공되는데 메인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배를 채울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 호수인 세반 호수. 내륙 국가 아르메니아엔 보석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