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희
<매크로교육연구소 대표>
최근에 친구가 보내 준 글, “한때 가장 잘 살았던 고대 중국의 송나라가 왜 망했는가?” 의 어떤 이의 논설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이 글의 요점은 이상적 도덕주의를 정치적 철학으로 밀어부치면 아무리 부유하고 강한 대국일지라도 결국 얼마나 허탈하게 끝나는가를 논리적으로 서술한 글이었다. 이상적 도덕주의는 현실적 도덕주의와 달리 합리적인 시장원리를 보지도 생각지도 못하며 결국 스스로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놓고 갑론을박 논쟁이 뜨겁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복잡한 사업장, 기업경영의 특성을 모르고 무조건 이상적 도덕주의로 터무니 없이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나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 우리의 이웃, 가족, 나자신이 직접 간접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것을 못 보는 근시안들이 너무 많다. ‘모두 잘 사는’ 사회주의, 예를 들면,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다는 이상적 도덕주의, 본인은 울타리를 만들어 집을 짓고 집안에 보안 장비를 설치해 보안을 더욱 강화하면서도 정치적 이슈에선 “울타리를 없애고 난민을 무조건 받아 ‘함께 가자’” 는 이상적 윤리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즉, ‘내 집은 안되지만 너희 집과 뒤뜰은 불법자들에게 열어줘라’ 식이다. 책임없는 행동파들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이나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진보적 입장’에서 이상주의적 정치 철학으로 몰아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주의일 수 밖에 없는 도덕, 윤리, 정의 등의 개념을 가지고 세계 유수 대학의 학자들이 끊임없이 논의해 왔다. 예를 들면 하바드 대학의 마이클 센들(Michael Sanders) 의 정의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나 데니스 탐슨(Dennis F Thompson) 의 윤리(Ethics)에 대한 글들을 보면 이상적인 것이 현실이 될 수 없어 늘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역설한다. 현실주의적 도덕은 이상주의적 도덕과 달리 ‘철학적 이론과 실제 상황이 잘 연결’되어지는 경우이다. 송나라의 패망은 이런 이상주의적 도덕이 이론과 실제 상황의 차이(gap)를 무시하고 무조건 밀어부쳐 기인된 것이다.
미국 정치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보면 이상주의적 도덕론을 향해서 부단히 노력해 온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거철만 되면 이상주의가 금방 현실화 되는 것처럼 우리 ‘풀’ 같은 무지인들의 귀와 눈을 흐려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한다.
두달 후면 미국의 총선거가 있다. 이 선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고 그 결과가 나와 가족, 이웃과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번 선거는 미국이 유럽처럼, 범죄가 판을 쳐 사회가 불안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 실제적 도덕주의 정치로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갈 것인가의 기로에 있다.
선거의 모든 결과는 우리 사회, 이웃, 가족, 나에게 무섭게 영향을 끼치기에 잘 보고, 잘 생각해서 아니,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해서 어떤 큰 그림이 나올지 원시안적 시야를 가지고 신중히 연구하여 꼭 귀중한 한표를 던져 ‘멋진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