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베테랑스 에듀
김형준 법무사팀
첫광고

[행복한 아침] 허물없는 부름

지역뉴스 | | 2017-08-19 20:20:53

칼럼,김정자,수필,행복한아침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고유의 지칭과 부름의 호칭이 있다. 아낙네의 호칭도 새댁이란 부름에서 엄마로 아줌마로 변환의 과정을 그쳐 마누라로 할멈이라는 피날레 부름으로 귀착하게 된다. 한인 출입이 거의 없는 공공장소에서 였다. ‘마누라’ 하며 부르는 소리에 얼핏 돌아보았더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으로 내 오라버니와 비등해보이시는 분이셨다. 부인되시는 분이 무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사이에 마누라 손을 지긋이 잡으시며 출입문을 향하신다. 아내를 향한 많은 부름중 ‘마누라’라는 불리움이 가장 정겹고 허물없는 부름의 절정임을 마주한 순간이다. 문득 한국방문길에서 오빠가 들려준 하소연이 떠오른다. 

결혼 삼십년 즈음에 가족과 대동없이 올케와 단둘이 정한데 없는 여행을 떠나셨단다. 부부 갈등이 극에 달하여 아무래도 더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싸늘한 인연으로 돌아서기 위한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고 발길 닿는대로 흐르고 흘러 작은 어촌 마을로 들어서면서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 수습할 수 없는 만감을 대책없이 내려놓고 물끄러미 아득한 바다에 시선을 던진 채. 한데 여행지에서 마주한 수척하고 까칠한 아내 모습이 눈에 들어와 집 떠날 때의 마음이 초생달처럼 사위어가더라는 것이다. 과연 아내는 누굴 위해 살아왔을까. 어이해 나에게로 보내졌을까. 갈등이 저녁 노을처럼 엷어져가기 시작하더란다. 바다 안개가 지척으로 몰려드는 경이로운 자연 풍광이 한 몫하진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긴 인생 노정 동안 함께 쌓아온 허물없는 신뢰에 비기랴. 

자연이 마음으로 들어와 곤한 인생살이에 고인 눅진하고 여타한 찌꺼기들을 닦아냈다지만 청산되지 않은 앙금과 삶에 잔재된 노페물이 잉여된 누추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아온 흔적들이 띄엄띄엄 가슴에 차오르고 목이 메이기 시작하자 이해할 수 없는 덩어리가 목까지 차올라 앙상한 올캐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어버렸다고 한다. 가슴을 꿰뚫는 뜨거움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남은 세월 동안 아내에게 자신을 바치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의지가 풍물과 정취에 뒤섞이면서 마음이 한 없이 잔잔해지더라는 것이다. 해피앤딩으로 흐뭇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신 오빠는 평온한 수채화 같은 삶을 그려내시며 산수를 누리시고 처음이자 마지막 길벗인 올캐와 함께 손을 꼬옥 잡고 다니시며 한아한 노년을 향유하신다는 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구비구비 그려놓은 고초의 마디들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깃거리는 아니더라는 것이다. 허물없는 부름, 마누라의 존재감을 일찌감치 확인한 오빠의 노년이 따습고 흡족해 보인다.   

일제 강정기에 태어나 유년기에 해방을 겪은 그 무렵의 여인들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묵언의 수고와 헌신의 표본처럼 살아왔다. 이즈음 젊은 세대들의 행보와는 비교될 수 없는 고전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해온 터이라서 개인의 삶을 누리지 못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가정이라는 포대기에 자녀와 시부모를 포함헤 남편까지 싸업고 스스로의 욕구도 파악을 못한 채, 과연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가 싶으리만치 진공상태로 살아온 여인들이다. 시절이 좋아져서 이제사 숨도 쉬고 방귀도 맘대로 뀌고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전형적인 아나로그 인생의 전철을 걸어온 것이다. 디지털 세상 속에 섞여 살아가도록 눈이 뜨이기 시작하고 마누라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세상 속으로 들어서고있다. 급변하는 시대의 물살이 마치 통큰 마누라로 살아가라는 신호로 보이기 시작하는 현상이 어인 일인가 싶다. 

여성인권과 권익이 강조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통찰력과 사고력을 필요로하는 세태로 바뀌어가고 있기에 무조건의 헌신은 무식의 상징으로 받아 들여지는 시대적 분위기로 바뀌고있다. 두고 온 아련한 노정을 들추어낼 여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노년에 접어든 마누라들의 금자탑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의 당당함에 걸맞는 멋들어진 삶이었다고 극찬하고 싶다. 아줌마라는 의연하고 떳떳한 이름표를 달고 가족을 온몸으로 품으며 하얀 설산을 넘어 능선을 가로지르며 생의 기착지에 당도했기에 이제는 푸른 풀밭을 거닐 수 있는 아름다운 노년을 누려도 되신다고 격려드리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이 되어버린 남편과 주름살을 훈장 삼는 마누라와 동화되어 늦가을 단풍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신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진리를 깨달아가며. 많은 부름 중 가장 허물없는 부름의 자리를 고수해온 마누라들의 월계관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이자율 올라도 집 반드시 사겠다”…올해도 콧대 높은 집값
“이자율 올라도 집 반드시 사겠다”…올해도 콧대 높은 집값

모기지 이자율이 결국 7%를 넘었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프레디맥의 18일 발표에 따르면 30년 만기 고정 이자율의 전국 평균치는 7.1%로 전주 대비 0.22%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 경험 적어도 투자 쉬운‘부동산 투자 신탁’
부동산 경험 적어도 투자 쉬운‘부동산 투자 신탁’

일반적인 부동산 투자는 구매한 건물을 통해 임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건물 가격이 오르면 팔아서 시세 차익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강아지 죽였다"…미국 대선판 난데없는 '개 논쟁'
"강아지 죽였다"…미국 대선판 난데없는 '개 논쟁'

'공화당 부통령 후보군' 주지사 회고록서 고백바이든 캠프, '개 산책' 사진 올리며 차별화  크리스티 노엄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로이터=연합뉴

브리트니, '14년 후견' 부친과 분쟁 종지부…소송 비용 합의
브리트니, '14년 후견' 부친과 분쟁 종지부…소송 비용 합의

"후견인 제도 2021년 끝났지만, 자유에 대한 바람 이제 완성"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4년 가까이 후견인을 한 아버지와 법적 분쟁을 완전히 끝냈다.27일 현지 매체

발리서 관광비자로 예능 찍다 효연 등 한국 출연진 한때 억류
발리서 관광비자로 예능 찍다 효연 등 한국 출연진 한때 억류

"정식 촬영 허가 안받아"…모두 풀려나 출연진은 모두 출국  '내맘대로 패키지 시즌2-픽미트립 인 발리'[픽미트립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자카르타=연합뉴

생활비 부담에…“병원치료 미루고 끼니까지 걸러”
생활비 부담에…“병원치료 미루고 끼니까지 걸러”

절반, 경제적 어려움 호소투잡 뛰고, 휴가 포기까지주택 소유주, 더 부담느껴  미국인들이 높은 주택 가격과 렌트비 부담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에 필요한 병원치료를 미루고 끼니까지 거

“해외 영주권자 사회복무요원도 귀가여비 줘야”

권익위, 병무청에 제도개선 의견 전달 미국 등 해외 영주권을 보유한 상태에서 스스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사회복무요원에게도 현역 병사와 동일하게 소집해제 시 귀가 여비를 지급해야

“두경부암, 담배·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발생”
“두경부암, 담배·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발생”

두경부란 눈·뇌·귀·식도를 제외한 구강, 구인두, 후두, 하인두, 비인두, 갑상선, 침샘 등을 통칭한다. 특별한 징후 없이 목소리가 변하거나, 목의 통증, 입속 궤양이 3주 이상

잡음이 끊이지 않는‘개정 FAFSA’… 혼란 언제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는‘개정 FAFSA’… 혼란 언제까지

대학 입학 통보를 받았거나 이미 등록을 마친 수백만 명의 학생은 현재 학생 본인이 부담해야 할 최종 학비가 얼마나 될지 계산하느라 바쁠 것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의 학자금 마

실명 주원인 당뇨망막병증, 10년 새 41.8% 증가
실명 주원인 당뇨망막병증, 10년 새 41.8% 증가

눈 망막은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신경 막이다. 빛을 감지해 시각 정보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해 색깔과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당뇨망막병증(diabetic r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