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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전통 되살리는 유럽의 ‘떠돌이 장인들’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17-08-14 09:09:39

중세,장인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기술과 경험 쌓으면서

방랑하는 미혼 청년들

자립과 자유 누리지만

전통적 규율 엄수해야

 

유럽 전역을 히치하이크로 누비는 그들은 금방 눈에 뜨인다. 통 넓은 코듀로이 나팔바지에 흰 셔츠, 그리고 벽돌공, 제빵사, 목수, 석수, 지붕수리공 등 직종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 재킷을 입은 그들의 차림새부터 독특해서다.

그들은 현대 유럽에서 중세의 전통을 재연하는 ‘떠돌이 장인들’이다. 여러 직종에서 필요한 훈련을 마치고 경험을 쌓기 위해 방랑하는 젊은 남성들인데 요즘엔 여성들도 포함되었다. 대부분 독일어 사용 국가 출신이다.

과거 떠돌이 장인들은 장인협회의 후원을 받으며 여행을 했고 지금도 상당수는 후원을 받는다. 그러나 또 상당수는 자유롭게 일하며 떠돌고 있지만 전통 유지를 위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엄격하면서도 신비로운 규율은 엄수하고 있다.

보통 떠돌이 장인이 되기 원하는 젊은 남녀들은 이미 길을 나서 다니는 장인들에게 자신들의 여정을 짜기 위한 후원과 도움을 요청한다. 떠돌이 장인이 되려면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빚이 없어야 하며 30세 이하의 미혼이어야 한다. 보통 2~3년 걸리는 훈련기간을 수료할 때까지 집을 떠나 자신들의 기술과 타인들의 선의에만 의존해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는데 동의해야 한다.

집을 떠나기 전날, 떠돌이 장인 지원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파티를 여는데 이 파티에서 행하는 의식 중 하나가 귀에 구멍을 뚫어 여정이 끝날 때 까지 착용해야 하는 이어링을 부착하는 것이다. 만약 떠돌이 장인의 규율을 어길 경우 이어링을 뜯어내게 되며 이후 그 사람은 사기꾼을 뜻하는 ‘찢어진 귀’로 낙인찍히게 된다.

파티 다음날 신참 떠돌이 장인은 고향 마을 경계 인근에 기념품을 묻고 시 표지판을 기어올라 경계 밖에서 대기하던 동료 장인들의 품으로 떨어진다.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출발의식이다.

그 후 몇 주, 몇 년 동안 떠돌이 장인들은 서로의 가족이 되어 직종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며 서로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된다.

떠돌이 장인들은 각자 포켓크기의 수첩에 방문하는 도시들의 인장을 받아 채우고 여정에서 이룬 과제의 증거를 기록한다. 전통적으로 이 수첩은 여정이 끝난 후 각자 취업할 때 이력서 역할을 하게 된다.

여정 중의 이들은 음식이나 숙박비를 돈으로 내지 않고 일을 해주는 것으로 대신하며 날씨가 따뜻할 땐 공원 등에서 잠자리를 해결한다. 행장은 간단하다. 일에 필요한 연장과 갈아입을 속옷, 양말, 셔츠 등을 꾸린 작은 봇짐이 전부다. 지팡이에 묶어 들고 다니다 베개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주머니가 달린 바지는 같지만 재킷은 직종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목수와 지붕 수리공은 검정, 재봉사는 밤색, 가드너는 짙은 녹색…그러나 큰 일거리를 맡았을 때는 가드너도 부엌일을 돕고 제빵사도 망치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중세에 시작된 떠돌이 장인들의 여정은 세계대전 중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는데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자립 기술을 익히려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고향에서 최소한 반경 60킬로미터 이상 멀리 떨어진 곳이라야 한다. 지원자의 상당수는 집과 부모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 길을 떠나며 고향마을을 바라보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길을 떠나 여정을 시작한 후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장 힘든 것이 여정을 끝내는 시기를 결정하는 일로 바뀌게 된다는 것. 일상의 책임과 단조로움이 오늘 밤 어디서 잘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환경에서 떠도는 도전을 즐거움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돈도 없고, 보살펴야할 가족도, 집도 없지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은 자유랍니다”라고 아프리카에서 목수 장인 여정을 계속한 26세의 독일 청년 아놀드 베임은 말했다. 

중세의 전통 되살리는 유럽의 ‘떠돌이 장인들’
중세의 전통 되살리는 유럽의 ‘떠돌이 장인들’

연장과 속옷 등을 꾸린 작은 봇짐만을 지고 일을 찾아 독일의 한 교외지역을 지나는 떠돌이 장인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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