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ㆍ크릴새우 마구잡이 오명
2015년 다양한 노력으로 벗어나
남극 연구, 이미지 회복에 중요
인천 송도에는 1만7,000㎞ 떨어진 지역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남극 생태계 연구를 전담하는 극지연구소다. 올 겨울 극지연구소는 동남극 로스해에 접한 남극 대륙 테라노바 베이 장보고기지에 연구팀을 파견해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연구를 시작한다. 바로 로스해의 해양생태계와 남극 야생생물의 서식 환경 연구다.
극지연구소가 지난 1998년 남극 남셰틀랜드 군도 킹조지 섬에 건설한 세종과학기지가 한국의 남극 진출의 상징이 됐다면, 2014년 준공한 장보고기지는 고층대기학, 수산자원조사 를 비롯해 세종기지 보다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하고 있다.
로스해 생태계 연구를 위해 조류학 전문가인 김정훈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이 오는 11월 장보고기지로 떠나 5년간 남극 생태계 보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 8일 연구를 지원하는 해양수산부에 펭귄, 도둑갈매기 등 남극 동물들을 포함해 남극 기후와 생태계 변화를 조사하기 위한 사업 보고를 마쳤다. 김 연구원은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가 지난 해 12월 로스해를 세계 최대 해양보호지역(MPA)으로 지정해 이곳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우리 연구진이 장보고기지에서 수행할 아델리펭귄 연구는 매년 남극생태계모니터링(CEMP)에 보고돼 로스해 생태계 보전에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 활동은 한국의 국제 위상과 연관돼 있다. 특히 불법 어업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필요하다.
한국의 원양 어선들은 지난 2011년부터 4년간 남극에서 심해 어종인 메로(파타고니아 이빨고기)와 크릴(남극 새우)을 불법 조업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2013년 예비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우리 어선들이 2015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남극 일대에서 잡은 메로의 어획량은 849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으로 수출돼 스테이크 요리에 쓰인다. 김 연구원은 “해양 보전에 기여하고 불법 조업을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노력 덕분에 2015년 4월 예비 불법어업국에서 해제됐다”며 “로스해의 해양생태계 연구는 한국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진들은 장보고기지에서 로스해의 아델리펭귄, 도둑갈매기, 물범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며 남극의 환경변화를 분석할 예정이다. 여기 맞춰 연구진들은 지난해 11월 장보고기지에서 아델리펭귄 10마리에 위성으로 실시간 데이터를 전송해 주는 장치를 달았고 이 중 6마리로부터 데이터를 수신해 분석하고 있다. 덕분에 연구진은 펭귄들이 어디서 쉬고 언제 밥을 먹는지 생활상을 실시간으로 엿볼 수 있다.
기존 세종기지 펭귄마을의 펭귄들에게 달았던 장치는 연구진들이 직접 이틀에 한번 꼴로 펭귄에게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하며 장치를 회수해 기록을 분석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장보고기지에서 펭귄들에게 부착한 장치는 그럴 필요 없이 3개월 동안 장기간 분석을 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펭귄연구는 10년간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 동안 세종기지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바다환경과 기후가 펭귄의 번식에 미치는 영향 등을 통합적으로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생태 환경을 교란하지 않도록 무인항공기를 이용해 동물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여기에 연구팀은 자동으로 펭귄의 둥지 수를 측정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 중이다.
더불어 세종기지도 야생생물 연구를 함께 진행한다. 지난 해 12월 킹조지섬을 다녀온 김 연구원은 호주의 장비를 도입해 펭귄 둥지의 촬영 범위를 크게 넓혀 한번에 100개 가까운 둥지들을 관찰했다. 김 연구원은 장보고기지로 출발하기 전까지 세종기지와 펭귄마을 길목에 있는 큰풀마갈매기(자이언트 패트롤)의 서식환경도 연구할 방침이다. 김 연구원은 “지질팀, 빙하팀, 펭귄팀이 장보고기지에서도 400㎞떨어진 혹독한 환경에서 국내 처음으로 장기간 조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약 30㎞ 떨어진 케이프 워싱턴 지역에 황제펭귄들이 모여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