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받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제기한 구속취소 청구에 대해 법원이 지난 7일 이를 인용하고, 검찰이 즉각 항고를 포기하면서 대통령은 8일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재판부가 구속기간을 일수로 계산하는 검찰의 기준이 피의자에게 불리하고 구속 전 피의자신문과 체포적부심 소요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되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쪽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구속기간은 날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전례 없는 법원의 판단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풀려나자 이런 상황을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던 수많은 국민들과 야당 등 정치권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은 별개의 절차이기 때문에 구속취소 청구의 인용이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원이 구속취소 청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윤 대통령 지지 세력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또 윤 대통령으로서는 재판과 탄핵심판 절차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윤석열이 석방되자 다음날인 9일 서울 도심 등 전국 곳곳에서는 이에 항의하고 조속한 탄핵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많은 시위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 파면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집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내란 혐의를 받는 대통령을 위해 법을 유리하게 해석한 법원과 항고 없이 놓아준 검찰을 보고서 사법 시스템을 믿을 수 없게 돼 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참가자들 가운데는 윤석열이 구치소를 나서면서 입술 주위에 한껏 힘을 준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인사하는 모습에 너무 분노가 치밀어 시위에 나왔다고 밝힌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윤석열은 서울구치소를 나오며 경호차에서 내려 자신의 석방을 환영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 차례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했고 손을 들어 흔들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관저 앞에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눴다.
한 보수신문은 “구치소를 나서 관저로 복귀하기까지 윤 대통령은 시종 득의만면 의기양양했다. 경호차에서 내려 구치소 정문 앞 150m가량을 걸으며 인사하고 손 흔드는 장면은 짧은 카퍼레이드를 연상시킬 정도였고, 당장 마이크만 있었더라면 일장 연설이라도 할 듯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차하면 대선 유세 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어퍼컷’ 세리모니라도 할 것 같은 태세였다.
구속기간 산정과 관련한 테크니컬한 문제로 풀려났지만 내란범죄 피의자로서 윤석열의 지위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그가 구치소를 나오는 모습은 마치 중범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나는 피의자 같았다. 야당은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화답한 윤 대통령의 행태에 “당신이 개선장군이냐”는 비판을 쏟아냈다.
‘불끈 쥔 주먹’ 또는 ‘들어 올린 주먹’은 종종 연대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또한 단결, 힘, 도전, 저항을 의미하는 경례이기도 하다. 윤석열이 들어 올린 불끈 쥔 주먹에도 자신의 극력 지지자들을 향한 이런 함의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린 인물이다. 그 자신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을 뜬금없는 석방에 기분이 크게 고양되고 들떴을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자신이 촉발한 그동안의 혼란과 갈등에 송구한 마음을 말과 태도로 먼저 표현하는 것이 예의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식을 기대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당분간 구치소 밖에서 보일 그의 행보에 우려가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