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달리기하려면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점점 더 악화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러닝하기에 좋은 계절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달리기가 취미인 김규민(44)씨는 3주가 넘도록 뒤꿈치 통증으로 고생 중이다. 족저근막염에 걸린 탓이다. 5월부터 러닝을 시작한 그는 “처음엔 7~8㎞ 정도 달리다가 많이 뛸 땐 2시간 동안 20km 안팎을 뛰었다”며 “소염제를 먹고 발바닥 마사지도 하고 있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족저근막은 뒤꿈치 뼈부터 발바닥 근육을 감싼 일종의 섬유막이다. 발바닥의 아치를 유지하고, 걷거나 뛸 때 발바닥에 전달되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무리한 운동으로 족저근막에 염증이 생기는 게 족저근막염이다.
고가의 장비 없이도 언제든 손쉽게 할 수 있고 건강과 친목까지 챙길 수 있는 러닝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러닝(running)과 모임을 의미하는 크루(crew)를 합친 ‘러닝 크루’(달리기 동호회)도 흔해졌다. 하지만 의욕이 앞서 무리하게 뛸 경우 김씨처럼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달리기는 체중 관리와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공복에 달리기를 하면 더 큰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다. 운동을 하면 탄수화물과 지방이 같이 연소되는데, 공복 상태에서는 체내에 탄수화물이 적어 체지방이 더 빠르게 연소하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해로운 저밀도(LDL) 콜레스테롤은 줄여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박윤길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달리기는 좋은 운동이지만 뛸 때 무릎과 고관절, 발목에 체중 부하가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항상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리기를 하고 난 뒤 다리를 구부리거나 곧게 펼 때 무릎에 통증이 있다면 슬개건염이나 반월상 연골 손상 여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슬개건은 무릎을 펴고 구부릴 때 역할을 하는 힘줄이다. 무릎의 앞부분에 위치한 동그란 뼈(슬개골)와 정강이뼈를 연결하는 이 힘줄에 염증 등이 생기는 게 슬개건염이다. 반월상 연골 손상은 무릎 관절 사이에서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반월상 연골이 파열되는 것이다.
두 질환 모두 무릎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가해질 경우 발병할 수 있다. 반월상 연골 손상은 방치 시 무릎 연골 손상으로 이어져 퇴행성 관절염까지 앓기 쉬운 만큼 치료가 필요하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찢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박 교수는 “무릎은 지지대 역할을 하는 별도의 장치 없이 위?아래 뼈를 근육과 힘줄이 잡아주는 구조라 다치기 쉬운 불안정한 부위”라며 “무릎?다리 근육은 자동차의 서스펜션과 같은 충격 흡수 역할을 하는데, 해당 근육이 적은 사람이 갑자기 10km, 15km씩 달리기를 하면 뛸 때마다 무릎에 충격이 그대로 가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평소 빨리 걷기 등으로 무릎 주변 근육을 키운 후 서서히 달리기 강도를 높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무리한 운동은 발 건강에도 직격탄이다. 아침에 일어나 첫발을 디딜 때 발뒤꿈치 쪽이 아프거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통증을 느낀다면 족저근막염을 의심할 수 있다. 족저근막염은 마라톤의 황제로 불린 이봉주 선수를 괴롭힌 질병이기도 하다.
부상을 예방하려면 달리기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게 좋다. 또한 본인에게 알맞은 러닝화를 신는 것도 중요하다. 달리기를 할 때 체중의 4배 안팎에 달하는 하중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러닝화는 달리는 동안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고 발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력을 높인다.
달리기를 할 때는 발 바깥쪽 뒤꿈치로 착지한 다음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을 안쪽으로 기울이는 ‘내전 현상’도 일어난다. 이게 과하면 몸의 무게중심이 안쪽으로 쏠리면서 발목 등에 무리가 가게 된다. 평발이거나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발바닥 부분(아치)이 낮은 경우 이러한 과내전 현상을 주로 겪는다. 이런 사람들은 발목·아치를 고정해 주는 러닝화를 신는 게 좋다. 반대로 아치가 높은 탓에 내전 현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충격이 관절에 전달되는 과외전의 경우는 부드러운 쿠션이 많이 들어간 러닝화를 골라야 한다.
달리기 전 스트레칭만큼 달리고 난 후 정리운동도 필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더욱 중요하다. 바른세상병원 관절센터 유건웅 원장은 “일교차가 큰 가을철에는 근육과 혈관이 수축돼 근육의 유연성이 감소한다”고 말했다. 정리운동은 달리기를 끝낸 뒤 5~10분 걷기, 제자리 뛰기 등을 통해 심박수를 서서히 낮추는 것이다. 달리면서 근육에 쌓인 젖산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러닝 후 무릎을 움직일 때 묵직하거나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면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로 봐야 한다”며 “잠깐 있다가 없어지면 괜찮지만 1주 이상 계속될 경우 병원에서 무릎 검사를 받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건강한 운동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족저근막염의 경우 3, 4개월은 뛸 생각을 접어야 한다. 밤사이 수축된 족저근막이 아침에 급하게 이완되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만큼 족저근막염 보조기를 써서 밤에도 족저근막을 이완된 상태로 유지하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족저근막과 아킬레스건을 늘려주는 스트레칭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