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침묵을 배워라 고요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들이라. (피타고라스, 580년 BC. 수학자, 철학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괴로움은
홀로 방에 앉아 고요함을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 파스칼 . 과학자 . 명상가 1623 -1662)
저믄 한해의 문턱에서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를 함께 읽으면서 이 풍진 세상을 뛰어 넘어 옛 시인들은 어떻게 살았나…
옛길을 시인의 마음으로 함께 걸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언감 생심 ' 마음 뿐 부족함이 많아 홀로 솔밭을 서성이며 시인들의
그 맑은 혼의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 왔을까… 명상에 젖어보기도 했습니다.
많이 부족했습니다. 혹시나 그 맑은 시성에 세상이야기를 더불어 하면서 함께 시인의 마음으로 걸어 보았지만 그 깊고 맑은 시인들의 경지를 멀리서 바라볼뿐 그 깊고도 오묘한 세계를 함께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 피타고라스'는 수학자, 과학자로 만 알았지만 그는 훌륭한 시인이었고, 명상가였습니다. 몇 천 년을 뒤를 살았던 '파스칼'도 그는 프랑스의 철인이요, 명상가였습니다.
두사람이 세기를 달리 살았지만 '피타고라스는 그의 시에서
'침묵을 배워라
고요함 마음으로
듣고 느껴라'
그냥 '맑은 혼'으로 깨어 있으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파스칼'은 몇 천 뒤의 사람이었지만 '모든 인간은 홀로 조용히 방에 있지 못한데서 비극이 찾아온다' 시인은 말합니다.
이 인간을 뒷방에 가두고 AI가 인간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혼동의 세상에 누가 과연 방에 홀로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에 시달리다 정신을 빼앗긴 이 길잃은 인간들의 세상을 이 과학자들은 이미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시인들의 예지는 세기를 뛰어 넘어 길을 잃은 인간의 이 혼돈의 세상을 이미 보고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의 첨단 기술에 인간은 점점 설 곳이 없어졌다. 인간 영혼 깊숙이 조용히 명상의 집을 짓지 못하면 맑은 우리 영혼은 쉴 곳이 없음을 시인들은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네 영혼 깊숙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혼의 안식의 집을 지으라… 그 맑은 혼의 순간은 고요히 내 혼이 쉴수 있는 혼자만의 고요함의 방에서 온 우주를 볼 수 있는 전체의 눈이 열린다.
그 침묵의 순간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그 순간 세상의 혼동 속에서 참자유함… 참안식의 세계가 열리고 그대 영혼이 새벽처럼 깨어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고 시인은 말한다. 깨어있는 그 순간, 홀로움의 영혼의 빈 방에서 참자유함이 한 영혼을 흔들어 깨울 때 시인은 시를 쓴다. 그 참자유함 , 그대 어두운 영혼이 새벽을 깨우고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 그 영혼의 참자유함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 반야여 대화취''
''진리는 불과 같아서 모든 사념의 지푸라기를 다 태워 버린다 .''
이 참된 안식이 그대 영혼속에 새벽처럼 깨어, 하얗게 타오르면
누가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삶이, 인생이 곧 춤이다 ''라고 시인은 말한다.
우린 왜 사는가 ?
무엇을 위해 이 험준한 세상을 숨가쁘게 달려왔는가 ?
손에 잡을 수 있는 소유의 굴레 속에서 허둥대며 살아온 흔적이 무엇이었나…
우린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왜 인간은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자신의 속뜰을 조용히 들여다 볼 잠시의 고요함의 시간도 없이 달려왔는가…
얼마를 더 뛰어야 더 잘 살고, 움껴 쥐어야 더 잘 산다는 ''소유 속의 빈곤'' 속에
왜 우린 허우적 거리는가…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얼마 만큼의 소유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소유는 채울수록 허기진 구멍 뚫린 독이다.
"들에 핀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해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태, 6:28)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조용히 말해보라…
지금 나는 과연 행복한가…
당신은 지금 나는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가…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