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새해 앞에 서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송구영신으로 다망한 시간을 보낸 탓으로 돌리면서도 습관처럼 살아온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새해에는 어떠한 동기 부여를 창출해야 할까, 새해를 이끌어갈 모티브 설정을 두고 노심은 고심 분투 중이다.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머리 속엔 마치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 마냥 진공상태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식에서 밝혀지는 영롱한 불빛처럼 반짝이는 발상 조차도 멈춘 듯 멍 때리기로 시간 낭비를 하게도 된다. 아무 것도 정확한 것은 없다고 겸손을 끌어들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고백 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스스로를 알고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자기가 누구인지 어떠한 사람인지를 깨달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골을 깊게 만들고 있다. 지인 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엉뚱한 화제거리로 서로의 견해가 옳다고 우겨대는 경우를 당한 적이 있다. 말없이 지켜보면서도 서로의 주장을 우기거나 비판하는 것 보다 명제의 옳고 그름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실없는 젓가락질에 집중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즈음처럼 어지러운 시대를 지나노라면 지인도 때론 외계인처럼 느껴지게 되고 함부로 의견을 발설하는 것 조차도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할 시대상이 어찌 곤고하고 서글프다.
살아온 세월의 뒷모습은 하루라는 오늘들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결산서요 생활통지표 같다. 충직하고 성실하게 살지 못한 시간의 낭비를 보게 되는 통신표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떠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명소리를 듣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해서 정확하게 지금은 없다. 지금이라 하는 순간은 곧바로 과거가 되고 미래는 속수무책 다가서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이라는 순간을 얕잡아 보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어 지금을 헐 값으로 흘러 보내고 있는 경향이 짙다. 그 결과물로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있다는 사실이 우뚝 버티고 섰다.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 형편과 처지도 각양이요 주어진 시간을 다스림 하는 태도나 방법 또한 각자 주어진 소양에 따라 격차를 이루게 된다. 살아가는 지표 위엔 시간이라 지칭하는 때를 세월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보게 되면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달이 일정한 운행 관계를 기준으로 시간 단위를 계측한 척도의 하나 치인데 이 눈금 위에서 인생들의 희로애락이 그려진다.
엊그제 새 달력으로 바꾼 것 같은데 어느 덧 새로운 디자인으로 갈아 입은 새 달력들이 벽에 걸렸다. 새 달력이 등장하면 마치 일년이란 시간을 덤으로 부여 받은 것 같지만 하루하루를 어떻게 긴축하게 알뜰하게 보내야 할지, 선물이 아닌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달력은 곧 시간 기록이다. 세상 모든 흐름 중에 가장 으뜸으로 귀하고 값진 가치를 지닌 것이 시간이다. 시간 틈새마다 생명의 탄생과 종말이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무의미하게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이면 떠오르는 조언들이 있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짧은 인생은 시간 낭비에 의해 더욱 짧아진다.’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면 그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사람은 하루의 보물을 파낸 것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냄은 내 몸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익한 말들이다. 무언 가에 집중 하고 있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되는대로 낭비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멍하니 앉은 채 심심해 보이는 모양새는 아예 용납하지 않으며 1분 1초도 농축하 듯 써야 후회가 없는 습벽이 있다. 시간 강박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상 앞에 자신을 아낌 없이 투자 하고 있다는 나름의 존재가치 세계 관이 지금껏 유효하다.
오늘 아침 창을 밝힌 해와 지구의 자전으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떠오를 해는 사전적 대안 분석에서는 별다른 격차나 갭이 없다. 그렇게 새로울 것 없는 아침들이지만 묵은 해와 새로운 해로 구분 지으며 의미를 부여하며 섣달 그믐 정점과 새해 초하루 1초 차이에 New Year폭죽을 터뜨린다.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소원을 빌고 새해 다짐을 하게 된다. 새해는 무던하게 새로움이 야단스럽지 않았으면, 내일도 어제 같은 오늘로, 평범한 일상의 이음줄이 되어 지기를 기도 드리고 있다. 하루하루를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면서.
새해에도 수 많은 분들의 덕분에 살아갈 것이다. 덕을 지녔기에 덕을 나누어 주는 분들은 결코 자신의 덕을 나누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인지 외로울 겨를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분들의 덕이란 상호적으로 아우르는 것이라서 누군가에게 내 덕을 나누면 동시에 자신도 그의 덕을 받는다는 사고와 추리가 이치에 맞는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기에 나누어 주는 덕을 받아 주는 이가 있음을 기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에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실 독자님 여러분 덕분에 평화롭고 기쁘게 글을 써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님께서는 모르는 사이에 저에게 덕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아울러 애틀랜타 한인 사회 모든 분들에게도 복이 덕이 되는 을사년 새해맞이가 되시기를 간곡히 빌어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영육 간에 건강한 새해가 열리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