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내다 본 창밖, 사방은 온통 무채색이다, 소나기 퍼붓는 뒷마당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장대비가 좍좍 쏟아지는 이런 날이 나는 좋다. 내가 십 년만 젊었더라면 당장 달려 나가 자동차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이웨이를 달렸을 텐데. 문득 깨닫는다. 이게 늙는 거구나.
비 한번 맞아볼까. 우산을 챙겨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채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슬리퍼 바닥이 축축해졌다. 소나무 둥치를 돌아 텃밭을 우려낸 황톳물은 갓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잠시 우편물만 챙겨 돌아왔는데 양말은 흙탕물 범벅이 되었다. 내 인생길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 같았다. 이런 느낌을 '데자뷰'라고 했던가. 까마득이 잊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여고시절 봄 학기 마지막 날, 장마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종례시간에 여름방학의 시작을 알리던 담임선생님이 결혼 발표를 했다. 머릿속에서 “퍽!”하고 전구가 터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담임은 나의 독일어 선생님이었다. 친구들이 또래 남학생들에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나는 선생님 눈에 들기 위해서 밤을 세워가며 독일어 공부를 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하교준비를 하는데, 왠지 그날이 지나면 선생님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마음에 불안해졌다.
퇴근길 선생님의 뒤를 몰래 밟았다. 광화문 네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선생님이 근처 레코드점 ‘올리버‘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서버린 듯했다. 쇳덩이 같은 발걸음을 내딛다가 내려다본 신발 속에서는 애지중지 아끼던 하얀 목양말이 흙탕물에 물들어 있었다. “어머, 내 양말!” 그날 이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지만, 황톳빛으로 물들었던 양말은 지금까지도 마치 한장의 사진처럼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다.
오늘이나 어제나 별 다름없이 무덤덤해진 초로의 여인에게 소싯적 짝사랑 추억이 떠오르다니. 생각해 보니 추억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시절인연이다. 즐거웠던 기억이든 가슴을 후볐던 기억이든, 지나온 삶의 어느 시점의 추억 속의 실체는 나였다. 지난 날의 추억들이 빗줄기에 가려진 풍경처럼 흐릿해졌으니 다행이지, 모든 감정을 그대로 품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인생이 고단했을까. 나이에 따라서 감성이 변하는 것도 참 고마워해야할 일이다.
청년 시절에는 ‘비 내리는 날의 수채화‘란 노래를 즐겨 들었다. 그 제목처럼 나도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을 그리고 싶어 수채화를 배웠던 적이 있었다. 쉰내 나는 아줌마가 입시준비생들과 함께 하는 머쓱함에 금세 그만뒀지만, 한때는 수채화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수채화 물감은 도화지에 닿으면 자유롭게 흐르며 번진다. 물감이 마른 후에 의도적으로 붓 터치를 더해도 물감의 흐름과 번짐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물감이 완전히 마른 후에야 드러나는 수채화처럼, 추억도 인생이란 도화지에 그려낸 수채화 같은 것이 아닐까.
장대비가 내리는 날, 떠올린 한 폭의 수채화처럼, 추억이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욕심을 느슨하게 정돈시키는 것, 저 마다의 추억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은밀함, 그 낭만을 모르면서 어찌 늘그막 인생을 즐길 수 있으랴. 그러고 보면 어쩌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향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