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사이가 그리 각별하지 않으셨던 부부로부터 긴급 SOS 문자를 받았다.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인데도 아니나 다를까 티격태격은 어쩔 수 없나보다. 큰 소리가 오가고 강도가 격렬해지다 보면 가재도구가 몸살을 앓고 중재하는 이도 체력이 요구되는 지경에 이른다. 번번히 개입 당해온 터이라서 부부학 개론이 알차게 적립되어 가고 있다. 남편을 타박하며 하소연 하느라 눈물 범벅이된 부인에게 ‘속 상하겠다. 시대가 언제인데 아내한테 그러면 안되지 실망이야’ 순간 부인 눈이 동그레진다. 남편 투정이 멈춰지고 주객전도 분위기로 가고 있다. 매번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다툼을 화해로 조정해주었고 넋두리를 들어주기만 했던 것을. 부부상의 또 다른 옆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편을 원망했던 감정보다 타인에게 드러난 굴욕감은 감정의 사사 오입도 반올림도 쉽게 넘어서는 것이 부부였구나. 모든 부부들은 나름의 부부 시나리오를 갖고 살고 있는 것이라서 매맞으면서도 관계가 유지되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남편을 노예처럼 동거인으로 삼고 해로하는 부부도 있기 마련인가보다. 의식의 교집합이 만들어낸 부부만의 유일한 문화가 있음이라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저들만의 불문율로 가정을 영위하는 기교일 수도 있겠다. 함께 삶을 공유해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동지애 같은 연민의 정으로 행복의 본질을 추구해온 것임을 직관하게 된다.

 

부부 서로가 그려내는 자화상은 천태만상이다. 자칭 타칭 인정받으며 대단히 잘나가는 아내는 남편을 곧잘 무시하려드는 여편네들로 두루두루 우월한고로 가정사를 주도하는 아내이다. 상전처럼 군림하는 아내를 받드는 노예 같은 남편의 행복 척도 눈금은 어디에 두었을까. 제멋에 겨운 잘난 남편은 아내를 일단 무시하는 남정네들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구호를 부르짖는 남편에게서 진정성있는 행복나눔을 추구할 수 있을까. 견제와 균형 잡힌 고른 관계를 모토로 삼는 것이 행복한 부부로 묶여지는 지름길인 것을. 균형이 허물어지면 겉으론 여상스럽게 보이지만 내면은 절름발이 부부일 수 밖에. 부부란 모든 것을 공유하며 동행하는 것이라서 결함들을 서로 안아주는 이타심이 존재해야 아름다운 부부 상이 될 것이다. 해서 부부를 이인삼각 경주로 비견하기도 한다. 한 생을 살아가노라면 어느새 모습까지도 닮아가고 서로의 자화상을 발견하게도 되나보다.

 

반려자의 단점이나 흠집을 들추며 몰아세우듯 무시하는 어투로 쏘아붙이는 소행은 상처를 받으라는 행위다. 아내가 아프면 내 갈비뼈가 아픈 것이요 남편이 아프면 내 몸이 아픈 것을. 배려가 담긴 유연한 대화는 서로를 향한 겸허함이요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로 이어진다. 자존심이 가세한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감으로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우격다짐으로 인정하라는 행위는 품격 없는 부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음이다. 함께 살아갈 방향성이나 가치관 초점이 일치되지 않은 채라면 초점을 조율하며 의로운 이룸을 향한 동기부여에 충실하게 타협안을 받아들인다면 부부학 점수는 우수함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제한받는 공간이지만 화려하진 않아도 조촐한 사랑나눔을 위해 격려와 서로의 제안을 적당하게 서로 용납한다면 아름답고 은은한 빛둘레를 만들어 갈 것이다.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부부는 사랑 안에서 행복하고 거룩해진다. 부족한 부분을 약점으로 경시하기보다 가끔은 눈감아주며 서로 세워주되 거룩으로 세워주자. 팬데믹으로 지루한 중에라도 함께 그려낸 생의 캔버스를 되돌아보는 여분의 시간을 만들어보자.

 

칼로 물베기를 자주하다보면 칼도 녹슬기 마련이다. 부부는 긴 세월을 동거동락하는 동안 서로의 자화상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행복한 모습은 남편이 그려낸 자화상이요 남편의 편안한 모습 또한 아내가 그려낸 자화상이다. 서로를 거울 삼으며 칭찬하는 부부로 변신해보자. 칭찬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라서 어색하고 민망함으로 미루어왔던 칭찬거리를 꺼내보자는 것이다. 칭찬하려 들면 뭉개구름처럼 몽실몽실 떠오르는 칭찬이 한아름일 것이다. 감사하자고 들면 감사할 일이 태산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만한 내 남편도 없음이요, 이만한 내 아내도 없지 않은가. 미운정 고운정이 핑계 없이 들겠는가. 어느 부부랄 것 없이 서로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부인은 부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이해 부족을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배일에 쌓인 신비한 내일들을 기대하는 기쁨으로 남은 날 동안의 후회 없는 서로의 자화상을 만들어 보자. 그러노라면 생의 여정을 압축한 고결한 수채화로 남겨질 것이다. 남은 날들이 하냥 줄을 서서 기다려 주진 않을터. 몇 뼘이나 남았을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지 않은가.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부학 개론’인데 핀잔을 불사하고 탕평이 필요하신 분의 SOS가 들려온 터라 멋쩍은 글을 내밀어 본다. 부부는 서로의 자화상임을 공감하시는 분들의 담백하고 홀가분한 목소리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