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남편 박여선 묘소에
118년 만에 부부가 한 자리에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남편으로 볼티모어에 유학온 아내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박여선의 묘소에 부부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묘소 바로 옆에 지난 3일 설치된 기념비는 앞면에 부부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생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이 기념비는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박대성 목사(베다니한인연합감리교회)가 박에스더와 박여선에 관심을 갖고 박여선의 묘소를 여러 차례 찾았고, 한국서 방문한 감리교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이 묘소를 소개하면서 후세들의 기억을 위해 제작을 추진하게 됐다. 박 목사는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라는 소책자도 발간한 바 있다.
박 목사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묘소에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노력했지만 성사되지 않다가 지난해 은사인 이덕주 교수 일행이 이 묘소를 찾은 후 기념비 제작 취지를 듣고 비용 5,000달러를 마련해줬다”고 전했다.
박여선의 무덤은 재미사학자인 방선주 박사가 처음으로 발굴했고, 한인사회에는 지난 2004년 1월 13일 워싱턴한인사편찬 관련 인사들이 묘소를 처음 방문하면서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박여선은 볼티모어에 묻힌 최초의 한인이며, 그는 미주에 한인 이민이 시작되기 전 사망했기에 그의 묘소 또한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 중 하나로 추정된다.
■ 박여선은…
박여선은 1868년 9월 21일 한국서 출생해 1900년 4월 28일 볼티모어에서 사망했다. 1893년 신분의 차이를 넘어 박에스더와 결혼하고, 이듬해 아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볼티모어의 여자 의과대학에 최연소로 입학한 아내를 위해 박여선은 뉴욕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아내의 학비와 생활비를 댔다. 4년간을 낯선 이국땅에서 상투머리 그대로 고생하며 아내를 뒷바라지 하던 박여선은 아내 박에스더가 의사가 되기직전에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아내가 의대를 졸업하기 불과 16일전이었다.
지난 3일 설치된 박여선·박에스더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