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성 vs 대위기 전조?
채권 매각 또는 손실처리
미 전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월가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이와 관련한 부실 대출채권을 은밀히 매각하며 손실 처리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은행 도이체방크의 한 계열사와 다른 독일계 금융사는 지난해 말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115년 된 ‘아르고노트 빌딩’에 대한 대출 채권을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패밀리오피스에 매각했다.
비슷한 시기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지에 보유하고 있던 사무용 빌딩 관련 부실 대출채권을 매각했고, 지난 5월에는 캐나다 금융사 CIBC가 3억달러 규모의 사무용 건물 관련 대출채권의 매각을 완료했다.
전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면서 대형 금융회사들이 해당 자산을 손실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용 부동산은 고금리 장기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실률 확대 여파로 관련 대출의 부실 확대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최근 나타난 대출채권 정리가 은행권이 보유한 전체 업무용 건물 대출 대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금융시장 조사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내 은행권이 보유한 상업용 대출채권 규모는 총 2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S&P 글로벌 마켓인텔리전스의 네이선 스토벌 디렉터는 은행들이 관련 익스포져(위험노출액)를 줄이는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진 것이라며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매각은 단발성 이벤트”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 같은 손실 상각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금융권의 손실 확대를 시사하는 신호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NYT는 “이 같은 (대출채권 매각) 조치는 은행권의 ‘만기 연장 후 문제없는 척하기’(extend and pretend)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상업용 업무용 건물을 소유한 차입자들이 채무 불이행에 돌입할 것임을 일부 대출기관이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평가했다.
법률사무소 크래머 레빈에서 부동산 부문을 이끄는 제이 네벨로프 파트너는 “은행들은 장부에 대출이 너무 많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몇몇 대형 은행들이 대출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넘기기 위해 자신이 대리하는 몇몇 패밀리오피스와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시장과 주주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제한된 수의 브로커만 참여시킨 채 조용히 딜을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네벨로프 파트너는 전했다.
상업용 부동산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매디슨 캐피털의 조너선 나크마니 매니징 디렉터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2년 내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라며 “아무도 업무용 부동산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장의 시선을 끌지 않은 채 조용히 이뤄지는 거래는 상업용 부동산 상황의 심각성을 감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법률사무소 오멜베니 앤드 마이어스에서 부동산 부문을 이끄는 마이클 해밀턴 파트너도 빚을 진 건물주들이 구매자를 찾는 거래에 여러 건 관여해왔다고 언급했다.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대폭 할인된 가격에라도 건물을 매입해줄 수 있는 구매자들을 조용히 찾을 수 있도록 1년의 기간을 기다려줬다고 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