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슈퍼 사이즈 미' 20주년
'패스트푸드=몸에 나쁜 음식'이라는 등식을 많은 이가 거의 본능적으로 품고 산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가 맥도널드이니 결국 '맥도널드=몸에 나쁜 음식'이 된다. 1961년 영업사원 출신의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사들인 후 맥도널드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대가도 치르니, 몸에 나쁜 음식의 대표라는 오명에 시달리며 선입견의 집중포화를 맞는다. 과연 맥도널드의 음식은 얼마나 몸에 나쁠까. 알아내기 위해서는 생체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인권에 위배될 수 있으니 선뜻 실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실험에 한 남자가 분연히 자원한다. 바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모건 스펄록(53)이다. 그는 한 달 동안 하루 세끼 모두 맥도널드만을 먹기로 결정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스펄록의 실험은 콘텐츠를 위한 것이었다. 하루 세끼 맥도널드만 먹고 벌어지는 건강의 변화를 기록해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고 세 가지 규칙을 세운다. 첫째, 앞서 밝혔듯 하루 세끼 한 달 동안 맥도널드만을 먹는다. 둘째, 주문할 때 '슈퍼 사이즈'를 먹겠냐고 제안받으면 거부하지 않는다. 셋째, 당시 미국인의 평균치인 5,000걸음 정도를 매일 꼭 걷는다.
1987년 여름에 등장한 ‘슈퍼 사이즈'는 명칭 그대로 미디엄과 라지를 넘어서는, 초거대 감자튀김과 탄산 음료를 햄버거에 곁들이는 선택지였다. 미디엄과 라지에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크지 않지만 양은 엄청났다. 소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월하니, 많은 이가 별 생각 없이 슈퍼 사이즈를 선택하고 과식을 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대가로 체중 증가와 건강 악화에 시달린다.
■영화 파장에 '슈퍼 사이즈' 옵션 없앤 맥도널드
스펄록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몸을 축내는 실험에 나서니, 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슈퍼 사이즈 미(2004)'다. 98분 동안 영화는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햄버거나 감자튀김은 물론, 맥플러리 같은 디저트까지 선택해 맥도널드의 모든 메뉴를 먹어 치운다. 점원이 ‘슈퍼 사이즈'를 권하면 주저 없이 선택해 꾸역꾸역 끝까지 다 먹는다. 그리고 심지어 주차장에서 토하는 모습까지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스펄록은 시들어 갔다. 실험을 시작할 때 84㎏(키 188㎝)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고작 닷새 만에 4.3㎏이나 늘었다. 우울감과 무기력, 두통을 느끼는데 맥도널드를 먹으면 증세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그를 두고 건강 상태를 기록하는 주치의는 패스트푸드에 중독됐다는 의견을 냈다. 스펄록의 몸무게는 계속 증가해 실험을 끝낼 때에는 95㎏이 되었다. 한 달 동안 11㎏이 는 것이다.
21일 차엔 부정맥을 느끼는 등 건강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자 내과 전문의가 당장 실험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그는 꾸역꾸역 30일을 채웠다. 그렇게 연속으로 먹은 90끼는 사실 비정상적으로 높은 빈도였다. 보통 사람들처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맥도널드를 먹는다고 쳤을 때 8년분이었다. 그 가운데 직원의 권유로 ‘슈퍼 사이즈'를 선택한 것은 전부 9끼였다.
‘슈퍼 사이즈 미'는 그가 이후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까지 일부 보여준다. 그의 파트너이자 채식 셰프인 알렉산드라 제이미슨이 해주는 음식을 먹고 스펄록은 디톡스 다이어트를 한다. 하지만 30일 동안 맥도널드만을 먹고 증가한 체중은 쉽게 줄지 않았다. 9㎏을 감량하는 데 5개월, 나머지 2㎏을 감량하는 데는 추가로 9개월이 걸렸다.
스펄록이 30일 동안 섭취한 엄청난 양의 설탕을 한데 모아 보여주며 다큐멘터리는 ‘정말 이런 음식을 먹고 살 것이냐'고 묻는다. 그렇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며 ‘슈퍼사이즈 미'는 다큐멘터리로서 전에 없었던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2004년 선댄스 페스티벌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며, 다큐멘터리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수준의 수익(2,220만 달러·약 500억 원)을 거둔다.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도 후보로 올랐다.
‘슈퍼 사이즈 미'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상영 6주 만에 맥도널드는 슈퍼 사이즈 옵션을 폐지했다. 다만 이런 비난에 만만한 표적으로 늘 시달려 왔었던 맥도널드가 손을 놓고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영국 맥도널드는 “매일 5,000칼로리를 한 달 동안 섭취했다면 무엇을 먹었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맥도널드는 여러분이 매일, 매 끼니 우리를 찾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음주 문제 숨긴 다큐멘터리의 결정적 오류
충격적인 내용 덕분에 평가는 대부분 호의적이었지만 혹평 또한 만만치 않았다. 미국 문화 매체 페이스트의 로버트 데이비스는 “‘슈퍼 사이즈 미'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 관심을 끌기 위해 조작된 콘텐츠"라고 비판했다. 의사를 동원해 건강을 기록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과학적이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바로 이 틈새를 ‘슈퍼 사이즈 미'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 파고들었다. 많은 이가 비슷한 실험을 좀 더 통제되고 과학적인 환경에서 해 ‘슈퍼 사이즈 미'의 허점을 밝히려 들었다. 대표적 사례가 또 다른 다큐멘터리 ‘팻헤드(2009)'였다. 미국의 코미디언인 톰 노튼은 원래 자신의 코미디를 위해 ‘슈퍼 사이즈 미'를 소재로 활용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자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너무 않았으니, 노튼은 ‘슈퍼 사이즈 미'에 대한 화답으로 아예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무엇보다 스펄록의 실제 식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맥도널드만을 먹어 매일 5,000칼로리를 섭취했다"는 주장이 과장됐다고 여긴 그는 스펄록의 대리인에게 식사 기록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튼은 훨씬 더 체계적인 계획에 맞춰 패스트푸드만을 먹는 다이어트를 실행했다. 모든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먹되, 일일 섭취 열량을 2,000칼로리로 제한했다. 한편 탄수화물은 100g으로 제한하지만 지방은 마음껏 먹는다. ‘지방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당시의 건강 이론을 반박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주 6일 일정 거리를 걸었다. 그 결과 노튼은 5.4㎏을 감량했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떨어졌다.
이밖에도 소소 웨일리 같은 인물이 열량을 2,000칼로리로 제한해 30일 동안 맥도널드만을 먹고 역시 체중을 감량하는 등 스펄록의 허점을 잇달아 지적했다. 이들의 비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맥도널드뿐만 아니라 탄수화물과 당 위주의, 미국의 양 많고 열량이 높은 음식으로 이루어진 식문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맥도널드만을 골라 열량 제한도 하지 않고 마음껏 먹어 나빠진 건강을 보여주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스펄록의 접근에는 굉장히 큰 숨겨진 오류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음주 문제였다. ‘슈퍼 사이즈 미'에는 의사가 그의 간 상태를 점검하며 “거의 인간 수준이 아니다"라고 놀라는 장면이 나왔다. 영화는 마치 이것마저 맥도널드 탓인 것처럼 시청자가 넘겨짚게끔 맥락을 조성했다. 하지만 스펄록은 술을 마셔 왔음에도 다큐멘터리 속 의사와의 만남에서 “마시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스펄록은 2017년이나 돼서야 “열세 살부터 술을 마셨다"며 음주 문제를 시인했다.
2024년은 ‘슈퍼 사이즈 미'가 개봉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살펴보았듯 발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다큐멘터리와 스펄록의 공신력은 세월이 지나면서 크게 떨어졌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도록 복잡한 오늘날 ‘슈퍼 사이즈 미'뿐만 아니라 어떤 건강 관련 콘텐츠라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이 세상에 건강을 반드시 지켜주는 유일한 비법, 유일한 음식이나 보조 식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