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구매력 여전히 ‘탄탄’
소비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현재 4조3,000억달러 더 많은 금융 유동자산을 쌓아두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들어 미국 가계가 팬데믹 지원금으로 적립해뒀던 초과저축이 바닥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미국인들의 소비 여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의미다. 수요 호조에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 역시 예상보다 더딜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월가의 베테랑 에드 야데니가 설립한 야데니 리서치의 연구 노트에 따르면 미 소비자들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7조달러에 이르는 예금과 머니마켓펀드(MMF)를 보유하고 있다. 언제든 출금해서 쓸 수 있는 성격의 자금으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12조7,000억달러)보다 4조3,000억달러 더 많은 규모다.
세대별로는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가 8조2,000억달러로 가장 많은 금융 유동자산을 보유했다.
야데니는 “대학 학자금이나 모기지대출 상환을 모두 끝낸 베이비붐 세대가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소비하기 때문에 소비자 지출은 높게 유지될 것”이라며 “고용과 실질임금 상승세가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구매력도 여전해 소비자들이 계속 돈을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데니 리서치의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소비자들의 초과저축이 고갈되더라도 소비는 둔화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초과저축은 2021년 2조1,00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올 3월(-720억 달러)을 기점으로 모두 고갈됐다.
초과저축의 총감소량은 약 2조2,000억달러지만 소비자들의 유동 금융자산이 4조3,000억달러 더 쌓여 소비 여력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야데니는 보고서에서 “소비자들은 아직 현금이 넘쳐난다”며 “초과저축이 제로가 되더라도 유동자산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미국 경제가 2분기에 다시 고공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애틀랜타연은의 국내총생산(GDP) 예측 모델인 GDP나우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2분기 GDP 전망치는 연율 4.2%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연은은 “초과저축이 고갈됐지만 고용 호조와 임금 인상, 자산 증가 등 소비 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유지되는 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이는 인플레이션 측면에서도 부담이다. 소비 여력이 클수록 수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RB·연준) 의장은 이날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순탄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인플레이션 수치가 더 높다”며 “올해 첫 3개월간의 지표를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 둔화 전망에 대한) 확신이 이전처럼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연방 노동부가 15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인플레이션이 소폭 둔화하는 조짐을 보였다. 4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4% 상승해 시장 전망치(3.4%)에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3.5%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안정세를 찾은 셈이다. 전월 대비로는 0.3% 올라 이 또한 3월(0.4%)보다 수치가 낮아졌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의 경우 3.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 전망치에 부합한 결과이면서도 2021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분석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살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