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사비용 세계 3위↑
한인타운에 직장을 두고 있는 한인 직장인 이모씨는 아침 출근하면서 빠짐없이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점심 도시락이다. 물가가 오르면 직장 주변 식당들의 음식값이 계속 인상되면서 점심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이씨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하고 있다. 이씨는 “귀찮고 집사람의 눈치도 보여 점심값이 싼 곳을 찾아 다니다 한계에 부딪혀 도시락을 싼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며 “점심값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오는 동료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직장 생활 10년차에 접어든 한인 김모씨도 지난해 말부터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김씨 이외에도 같은 부서의 동료 3명도 도시락을 싸와 김씨와 점심을 함께 먹고 있다. “예전엔 거래처와 점심 약속이 많았지만 지금은 점심 먹자는 거래처들이 크게 줄어 자비로 점심을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식당 밥값 부담으로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것도 싫증이 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 직장인들 사이에서 도시락을 지참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새로운 점심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치솟는 각종 생활 물가에 점심값마저 부담이 되자 한 푼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도시락 싸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팁이 없는 푸드코트나 패스트푸드를 가는 것도 다반사이다.
한인 직장인들의 점심 비용 증가는 식료품을 비롯한 외식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다. 연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4%로 이중 식료품 가격은 전년에 비해 2.7% 상승했다. 이에 반해 외식 비용은 전년 대비 5.2%로 일반 물가 상승률을 앞질렀다. 식당 물가는 지난 한 해 동안 7.1%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미국 직장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점심값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국가와 도시 비교 통계 웹사이트인 넘베오에 따르면 12일 기준 전 세계 94개국의 일반 레스토랑(고급 레스토랑 제외) 가운데 한끼 밥값을 비교한 결과 미국은 평균 20달러로 세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비싼 곳은 스위스로 평균 28.57달러였고, 뒤를 이어 덴마크의 평균 밥값은 21.68달러였다. 미국은 스위스와 덴마크와 함께 평균 밥값이 20달러를 넘어서는 국가 중 한 곳인 셈이다.
한인타운 내 한식당의 메뉴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10달러 미만의 저렴한 가격에 점심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점심 메뉴 가격이 15~25달러로 크게 오른 상태다. 여기에 팁과 발렛비를 더하면 점심값으로 30달러를 쓰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한인타운 내 한인 요식업계의 매출 하락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한식당 업주는 “밥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불평을 듣고 있지만 식재료와 인건비 상승으로 어쩔 수 없이 메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재택근무로 직장인들의 점심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도시락 직장인’이 늘어가면 외식업 매출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