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성 ‘테라·루나’ 사태 과정·피해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피해를 유발한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일으킨‘테라폼랩스’가 결국 미국에서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공동창업자였던 권도형·신현성씨의 행적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본보 23일자 A1·3면 보도) 이번 가상화폐 투자사기 의혹의 공범 혐의로 한국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신현성씨가 지난해 5월 매머드 변호인단을 꾸린 것으로 나타났다. 신씨의 변호인단은 5곳의 유명 로펌과 30여명의 변호사로 구성됐다. 변호인단에는 또 검사장과 부장검사 등을 지낸 검찰 출신 변호사 9명, 법원 출신 변호사 3명 등 전관들이 대거 포함됐다. 전 재산을 날린 수천명의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화려한 가족관계와 초대형 변호인단을 방패 삼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신씨에 대해 공정성 논란이 거세다.
■피해자 집단 소송
테라·루나 폭락으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2022년 5월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와 신현성 공동창업자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투자자를 변호했던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서울남부지검에 권씨와 신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LKB는 소장에서 “권도형씨와 신현성씨가 투자를 유치하면서 알고리즘 설계 오류와 하자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행위, 백서 등을 통해 고지한 것과 달리 루나 발행량을 무제한 확대한 행위가 기망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LKB에 따르면 한국은 물론 미국·이탈리아 등 해외 투자자의 문의가 이어졌으며, 온라인 커뮤니티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 가입자는 수천명에 달한다. 이번 고소·고발건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취임 후 부활한 ‘여의도 저승사자’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수사하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검찰은 신씨 등이 ‘테라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추진되는 것처럼 허위홍보·거래조작 등 부정한 수단을 동원해 ‘테라·루나’ 코인이 판매·거래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당초 ‘테라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법적으로도 허용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했던 것을 알면서도 사업을 추진해 투자자들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봤다.
■두 차례 기각된 구속영장
한국 법원은 신현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은 2022년 11월 신씨를 포함한 핵심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3월에도 자본시장법 사기적부정거래 및 특경법사기 혐의와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배임증재 및 업무상배임 혐의를 추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영장 청구를 또 다시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신씨의 화려한 가족관계가 알려졌다. 신현성씨의 조부는 유신정권 실세로 1960년대~70년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고 신직수씨다.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장녀와 결혼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신씨의 고모부, 홍 회장의 장남인 홍정도 중앙일보 부회장과는 사촌간이다.
당시 판사는 “‘가족관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 우려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유력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초호화 변호인단
한국 법률신문에 따르면 신현성씨는 지난해 5월 5개 로펌, 30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매머드’ 변호인단을 꾸렸다. 신씨의 변호인단에는 대형로펌 법무법인 광장과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법무법인 로백스, 가상화폐를 전문 분야로 하는 부티크 로펌 법무법인 세움, 법무법인 케이에이치엘, 법무법인 다전과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변호인단에는 굵직한 이력을 지닌 전관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다.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을 지낸 김기동(21기) 변호사를 필두로 검찰 출신 변호사가 9명,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고범석(29기) 변호사 등 법원 출신 변호사가 3명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반부패비서관을 지낸 박형철 변호사도 신씨의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30여 명 규모의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꾸린 사례는 처음 보는 것 같다”며 “삼성 상속 사건에서도 2~3개의 대형로펌과 개업한 전관 변호사로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대기업 오너 사건보다도 훨씬 더 큰 변호인단을 꾸린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 ‘피눈물’ 흘린 피해자들
테라·루나 폭락사태로 인한 한국 내 피해자 규모는 약 28만 명으로 추정된다. 폭락사태 직후 개설된 온라인 카페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에는 “18억원을 넣었는데 500만원만 남았다” “10억원을 투자해 9억4,000만원 잃었다” 등 피해 사례가 이어졌다.
전세계적으로 400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미국 등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레딧 사용자는 “평생동안 모은 45만 달러라는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면서 “은행에 지급할 돈이 없다. 나는 이제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외과 의사는 “10년간 저축한 2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맡긴 돈의 90% 이상을 날렸다”고 하소연 했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를 별도의 이윤 창출 모델 없이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폰지 사기’로 보고, 피해 보상과 함께 관련자들의 엄벌을 호소하고 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