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경동나비
첫광고
엘리트 학원

[수필] "아들아 보아라"

지역뉴스 | | 2024-01-02 10:47:47

수필,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임태주 시인 모친의 시)

나는 원래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 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아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다.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 알이 통통하게 물려 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로운 도라지 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리 없다.

나는 밥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고

가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는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듯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새끼들 불러

전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때

엄마는 왜 나를 외면하며 못본척 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네가 그일을 서러워 물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 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도리의 값어치보다 네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애미로써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 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 한여름  날씨같아서

비내리겠다는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 신명께 기댄다.

 

운수 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물살이 센강을 건널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며 건너야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며  애태우며 제속을 파먹고 살지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며 자랑하고 다녀라

……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라.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구나.

부질없고 쓸모 없는 것은  담아 두지 말고 바람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듯이 잘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날

사이 사이 살구 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곱게 들어서 좋았다.

내 삶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 하지도 마라.(시,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

 

이 시는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쓴 시입니다. 

삶의 지혜, 맑고 순수한 어머니 가슴이 시 속에  면면히  살아있어 

새해, 새날의 지혜, 어머니 가슴으로 살고싶어 올렸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박경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주민 뜻 반영 않은 HOA 규정… 정부 법이 보호한다
주민 뜻 반영 않은 HOA 규정… 정부 법이 보호한다

‘주택 소유주 협회’(HOA·Homeowners’ Association) 주택의 외관과 단지 내 편의 시설 등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운영된다.‘커뮤니티 협회’(Co

주택 단점 보완하고 장점 부각하는‘홈 스테이징’
주택 단점 보완하고 장점 부각하는‘홈 스테이징’

집을 팔 때‘홈 스테이징’(Home Staging)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홈 스테이징은 주택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는 일종의 판매 전략이다. 홈 스테이

객실예약 필요없어… 편의시설만 사용 ‘데이패스’ 인기
객실예약 필요없어… 편의시설만 사용 ‘데이패스’ 인기

부진한 호텔 수익 만회 전략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지 기분경험·가치’중시 수요와 맞아호텔업계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객실 예약 없이 편의 시설만 사용할 수 있는‘데이 패스’를 판매 호텔이

미국서도 변종 엠폭스 감염 사례 확인
미국서도 변종 엠폭스 감염 사례 확인

엠폭스 바이러스 테스트 장비 [로이터]  아프리카에서 확산 중인 변종 엠폭스(MPOX·옛 명칭 원숭이두창) 감염 환자가 미국에서도 나왔다.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6일 최근 동

갈수록 치열해지는 UC 입학 경쟁…‘종합적 평가 방식’이해해야
갈수록 치열해지는 UC 입학 경쟁…‘종합적 평가 방식’이해해야

UC 대학은 많은 가주 학생들이 선호하는 공립대학이다. 타주에서도 입학을 원하는 학생이 많을 정도로 UC 대학 높은 교육 수준이 인정받고 있다. 각종 대학 순위에서 상위로 꼽히는

가볍지 않은 언어장애… 부모의 귀에서부터 시작한다?
가볍지 않은 언어장애… 부모의 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유치원생 5세 아이를 둔 박모(40)씨는 지난해 가을, 아이를 나무랐던 일을“지금도 후회한다”고 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그날은 아이가 하원

10명 중 7명은 근시… 소아·청소년 근시‘빨간불’
10명 중 7명은 근시… 소아·청소년 근시‘빨간불’

“영유아 검진에서 난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안과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다가 아이가 네 살 되던 때부터 안경을 썼거든요. 시력 발달 속도가 더뎌서 최근 검진을 해봤는데, 근시

신물 올라오는‘역류성 식도염’, 누울 때 왼쪽이 좋아
신물 올라오는‘역류성 식도염’, 누울 때 왼쪽이 좋아

저녁 식사를 후루룩 마친 뒤 곧바로 소파에 누워 TV나 스마트폰 등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음식물이 소화되기 전에 누우면 위 속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지 못하게 막는‘하부 식

“똑바로 눕지 못하겠어요”… 누우면 더 아픈‘급성 췌장염’
“똑바로 눕지 못하겠어요”… 누우면 더 아픈‘급성 췌장염’

주말 아침 체한 증상이 있던 30대 남성 K씨는 복통과 구역 증상이 심해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누워서 쉬려고 해도 등으로 뻗치는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검

단백질 파우더·라면… 음식도 아닌 음식을 먹고 있다
단백질 파우더·라면… 음식도 아닌 음식을 먹고 있다

초가공식품의 역사와 현재거의 매일 마트에 간다. 식재료를 사기도 하지만 남들이 무엇을 사는지도 관찰한다. 특히 계산대에 줄을 서 있을 때가 좋은 기회다. 각자 선택이 매우 다양할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