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높은 집값 부담에 세입자로 남는 경우 늘어
조지아주 도슨빌에 거주하고 있는 앨리샤 카우치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워킹맘으로 12살짜리 딸과 함께 4베드룸의 타운 홈을 월 2,085달러에 렌트해 살고 있다. 카우치 부부의 연소득은 12만2,000달러이지만 카우치 부부는 렌트비를 내고 있는 세입자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앨리샤 카우치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택 소유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렌트 전용 타운 홈 단지 내에서 렌트 생활은 만족할 만하다. 단지 내 2개 수영장에 매달 다양한 행사들이 단지 세입자를 위해 열리고 있다.
앨리샤 카우치는 “학군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 집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안락하고 편하다”며 “매달 저축을 해서 분기에 1번 가족 여행을 가거나 실내 리모델링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살 수 있는 고소득에도 불구하고 집을 사는 대신 렌트 주택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고급 임대 주택에 대한 수요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시장 수요가 늘자 부동산 개발업체들도 렌트 전용 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등 고급 임대 주택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부동산 투자업체 GID는 미 전역 30개 지역에서 약 5만 유닛의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세입자의 25% 정도가 연소득이 20만달러를 상회하는 고소득자들이다. GID 그레그 베이츠 최고경영자(CEO)는 “소득에 따라 세입자와 주택 소유주를 정의하던 관례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근 들어 그런 사례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2일 월스트릿저널(WSJ)은 주택 구입 대신 렌트를 선호하는 고소득가구들이 렌트 시장으로 몰리면서 렌트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고소득층의 렌트 시장 유입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미네소타대 인구센터 데이터(IPUMS)에 따르면 연소득이 100만달러가 넘는 백만장자들이 주택을 임대해 거주하고 있는 가구수는 지난해 4,453가구로 2017년 956가구에 비해 무려 4배나 넘을 정도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2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 렌트 가구수도 지난 2010년에 비해 4배나 증가했다.
고소득 가구들이 주택 소유를 포기하고 렌트 주택을 선호하는 데는 고금리가 자리잡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7%대를 유지하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에 주택 매물도 크게 부족해지면서 주택 가격이 급등한 상태다. 높은 주택 가격에 모기지 상환 부담을 감수하면서 주택을 구입하기 보다는 편리하고 안락한 고급 렌트 주택에 고소득 가구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렌트 시장 유입으로 지난해 미 전역 세입자 수는 1억300만명으로 2007년에 비해 15%나 증가했다.
고소득층의 렌트 시장 유입으로 렌트 시장과 세입자에 대한 고정 관념도 깨지고 있다. 기존에는 렌트 시장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으로 상승하는 일종의 디딤돌 단계로 여겨졌고, 세입자는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고소득층이 렌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하버드대학교 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2012년 월 600달러 이하 렌트비의 유닛 수는 940만 유닛에서 2022년엔 720만 유닛으로 23% 줄어든 반면 월 2,000달러 이상 렌트비 유닛은 320만 유닛에서 730만 유닛으로 크게 증가했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고소득층 세입자를 잡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타운 홈 단지 형태의 대규모 고급 렌트 단지를 조성해 높은 렌트비를 받으며 임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산관리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야디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모두 553건의 대규모 렌트 주택 단지가 조성됐거나 조성 중에 있다. 이로 인해 8만4,459유닛의 고급 임대 주택이 공급된다. 이는 2019년 185건의 2만1,231유닛 공급에 비해 대략 3배나 늘어난 수치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