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게임스, 구글 상대로 낸 반독점 소송 승소
미국의 게임 제작·유통사인 에픽게임스가 구글을 상대로 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장터(앱 마켓) 반독점 소송’ 1심에서 11일 승소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앱 마켓 운영사가 앱 유통을 통제하고, 최대 30%의 결제 수수료까지 따박따박 챙기는 건 독점 행위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앱 유통 생태계를 지배해 온 ‘골리앗’ 구글이‘다윗’ 격인 고객사에 패한 셈이다.
이번 판결은 애플의 완승으로 끝난 ‘애플·에픽게임스 간 소송’ 1·2심 결과와는 정반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두 사건 모두 향후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내려지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애플·구글의 ‘수수료 갑질’ 논란이 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구글 패소’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는 “구글의 패배로 애플·구글의 앱 마켓 독과점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구글이 앱 마켓에서 결제 방식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반(反)경쟁적 행위를 해 왔다”고 주장한 에픽게임스의 손을 들어줬다. 9명으로 꾸려진 배심원단은 10개 쟁점에 대해 만장일치로 구글 패소를 평결했다. 원고 승소가 드문 반독점 사건 재판에서 에픽게임스가 소송 제기 3년 만에 거둔 이례적인 승리였다.
구글과 에픽게임스 간 ‘전쟁’은 2020년 발발했다. 그해 8월 에픽게임스가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아이템을 자사 홈페이지 등에서 구글 플레이스토어(구글)·앱스토어(애플)보다 20%가량 싸게 팔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애플·구글이 앱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결제(인앱 결제)에 자사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강제하고, 15~30%의 수수료를 챙기는 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애플과 구글은 포트나이트를 앱 마켓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응수했다. 에픽게임스는 두 회사에 대한 소송 제기로 맞대응했다. 결과에 따라 애플과 구글이 각각 지배하고 있는 양대 앱 유통 생태계가 뿌리째 뒤흔들릴 수 있는 ‘세기의 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애플과 에픽게임스 간 소송에서 1심(2021년 9월)과 2심(올해 4월)은 모두 ‘애플 행위는 반독점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애플의 자사 과금 시스템 이용 강요가 반시장적이긴 하지만, 반독점법을 위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구글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배심원단의 판단은 달랐다. 테크매체 ‘더 버지’는 구글이 다른 앱 마켓의 성장을 막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사, 대형 게임 개발사와 비밀리에 수익을 배분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애플 사건 재판은 (배심원단이 평결한) 구글 사건과는 달리, 연방판사가 (직접) 판결했다”고 짚었다. 구글은 △그간 인앱 결제 수수료 인하 등 앱 개발자들에게 유리한 조치를 취해 왔으며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무너지면 애플이 앱 유통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 설득에는 실패했다.
구글이 즉각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미국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연방대법원에서 수년 뒤에나 내려질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이번 1심 결론은 애플·구글의 앱 장터 정책 유지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