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팬데믹 수준 웃돌아…임금 상승도 여전히 높아
월가 대부분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비관론도 여전하다고 월스트릿저널(WSJ)이 7일 보도했다.
구인 건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수준을 웃돌고 임금 상승률도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증시 랠리가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14일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2% 올라 지난 7월(3.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0%로, 2021년 9월(4.0%) 이후 가장 낮았다. 이후 미국 주식과 채권 시장은 랠리를 지속해 지난달 상승률은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고 굳게 믿은 투자자들이 연준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내년 봄에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쪽에 베팅한 것이다. 금리 인하에 나선다면 지난해 초부터 시장을 뒤흔든 긴축 행진의 종료를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관론의 근거는 CPI 말고도 많다.
연준 관리들은 에너지·식품을 뺀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지표를 중시하는데, 이 지수는 지난 10월 약 3.5%였지만 3개월 연율로 환산하면 2.4%에 그쳤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코로나 사태 때 물가를 끌어올렸던 요인들이 시들해져 인플레이션이 계속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모든 미국인이 동시에 정부의 지원금으로 물건 구입에 돈을 썼고, 코로나 공포가 진정되자 여행 및 외식 같은 서비스에 지출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토머스 시먼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행동의 특이점이 사라져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이 줄었다”고 말했다.
팬데믹 때 많은 숙련 노동자가 떠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원으로 교체돼 생산성이 떨어졌던 문제도 해결됐다.
저숙련 노동자들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시간당 생산성이 떨어짐에 따라 기업이 수요를 맞추기가 어려워진 점은 물가를 올린 요인이었다.
기업들이 적합한 근로자를 찾기 위해 경쟁하면서 임금도 상승했다.
또한 많은 애널리스트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여전히 경제 전반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다.
고금리는 차입 비용을 높게 만들어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를 낳는다. 이는 가계와 기업의 지출 감소와 고용주들의 채용 축소에 따른 임금 상승 둔화로 이어진다.
실제로 연준이 금리 인상 행진을 시작한 이후 미 경제 성장률은 깜짝 증가한 지난 3분기를 제외하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평균을 밑돌았다.
노동시장도 여전히 뜨겁지만, 연준의 희망대로 냉각되고 있다.
UBS의 브라이언 로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처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 경기 침체 없이는 금리 인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연착륙 시나리오가 적절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인 2%로 잡히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많은 이가 연준이 현 수준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금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시장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도 한다. 경제가 냉각됐다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인(Job opening) 건수는 팬데믹 때 수준을 여전히 상회하고 있고 물가 상승의 결정적 요인인 임금 상승률도 여전히 높다.
씨티그룹 앤드루 홀렌호스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생산성이 연평균 1%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임금 상승률은 약 3~4%의 인플레이션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는 특히 임금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는 서비스 분야 인플레이션의 감소가 지속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근로자들이 더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관론이 자멸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리 인하 기대는 주택담보대출부터 회사채까지 모든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급락시켰는데, 이에 따른 증시 호황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고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소비를 촉진했다.
투자운용사 티로우프라이스의 블레리나 우루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의 회복력을 감안할 때 금융 상황의 추가 완화는 물가 압력을 재점화할 수 있는 수요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