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호황 이후 불황…2015년 ‘파산 러시’ 우려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예고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머스크의 빈센트 클레르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초 직원 3,500명을 추가 정리해고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 6,5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합치면 1만여의 직원을 내보내는 셈이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올해보다 6억달러를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실적 악화 때문이다. 머스크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이 5억2,100만달러로 지난해 88억8.000만달러에서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48.5%였던 영업이익률은 올해 -0.3%까지 내려오며 적자전환했다. 3분기 총매출도 지난해에 비해 47%나 급락했다. 경영 실적 악화는 팬데믹 이후 해운운임이 2019년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컨테이너선이 화물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이 계속된 데 따른 것이다.
클레르크 CEO는 “컨테이너선의 심각한 공급 과잉으로 해운업계의 불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2~3년의 불황에 대비해 재무제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포괄적인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운임 하락과 컨테이너선의 공급 과잉 문제는 한국의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의 인수 협상 과정의 변수가 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인 하림이 해운업의 다운사이클을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테이너선의 운송 능력은 2,770만TEU(1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다. 여기에 올해 인도 예정인 컨테이너선의 규모는 780만TEU로 역대 최대 규모가 된다. 내년 수요는 1%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은 9%나 늘어 운임 급락에 속도를 더할 것이란 전망이다.
해운업체 사이에선 2015~2016년 ‘파산 러시’가 이어졌던 사태가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월스트릿저널(WSJ)은 팬데믹 이후 해운 운임이 급락하고 있는 상왕에서 대규모 컨테이너선 투입이 예정되어 있어 전 세계 해운업계가 운임 하락과 공급 과잉의 이중고 속에 불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해운업계가 컨테이너선의 공급 과잉에 직면하게 된 것은 팬데믹 시기 소비재 화물 수요가 급등하면서 공급이 부족해지자 컨테이너선의 신규 건조 주문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조선업계가 건조 예정인 컨테이너선의 규모는 전 세계 운송 능력의 26%에 달하는 것이다. 신규 건조된 컨테이너선은 2년 내 인수될 예정이다.
공급 과잉은 가뜩이나 떨어지고 있는 해운 운임 하락세에 속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기준 국제 컨테이너선 운임료 시황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993.21을 기록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해 초 5109.6에 비해 80.6%나 감소한 수치다. 해운업의 호황기였던 팬데믹 시작 직전인 2020년1월 1022.58 보다도 낮은 수치다.
공급 과잉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 수요는 이미 위축된 상태다. 최근 미국 내 소득 하위 80%의 초과저축분이 2020년3월 수준을 밑돌고 있을 정도로 소비 수요가 둔화됐다.
공급 과잉에 가격 협상력마저 약화되면서 해운 업체들은 아마존과 타깃 등 대형 소매업체들의 내년도 운임을 올해 컨테이너 당 6,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대폭 인하해 주고 있다. 그마저 계약의 60%가 장기 계약이어서 해운업계의 불경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의 내년도 실적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해운 분석기관 드류리에 따르면 주요 컨테이너 선사의 내년도 손실이 15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고 올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8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 1위 선사인 MSC는 보유하고 있는 800여척의 컨테이너선 중 일부를 폐기해 공급 과잉을 줄이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WSJ은 팬데믹 호황으로 막대한 수익을 남긴 주요 선사들이 자본력을 갖고 있어 불황으로 인한 줄파산에 의한 통폐합 현상은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