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금리 16년만에 5% 돌파
전 세계 자산 가격의 벤치마크가 되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를 돌파한 것은 ‘2개의 전쟁’에 따른 미 국채 발행 증가와 여전히 양호한 미 경제 지표, 그에 따른 긴축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국채 시장의 ‘큰손’인 중국이 미 국채를 매도하고 있는 데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RB·연준) 의장이 ‘고금리가 더 오래갈 것(Higher for longer)’이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금리 상승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리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점점 불확실해지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국채금리 7%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19일 미 경제 방송 CN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8월 말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한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급기야 이날 심리적 마지노선인 5%를 돌파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시중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채 수익률이 상승함에 따라 주택 및 자동차 대출부터 기업 인수 자금 조달 비용에 이르기까지 시장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전날 8%를 돌파했는데 이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CNBC는 월가 전문가들을 인용해 국채금리 급등의 원인으로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미 경제 지표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 확대 △기간 프리미엄 상승 등을 꼽았다. ‘월가의 황제’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금리가 7% 수준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시장의 경계감은 극도로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경제 지표는 파월 의장의 말처럼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17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해 시장 전망치(0.2%)를 크게 웃돌았다.
연체율 증가와 학자금 대출 상환 등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것이다. 이날 발표된 주간 신규실업 수당 청구 건수도 19만 8,000건으로 시장 전망치 21만 건을 하회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에도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며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우려가 커진 것도 국채금리를 끌어올린 주요한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은 1,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안보 예산을 의회에 송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채 발행이 늘면 국채 가격은 하락(국채금리 인상)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올해 발행한 국채가 이미 1조8,000억 달러에 이르고 연말에는 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월가는 국채 시장이 공급 측면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많은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매입을 축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8월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보유 규모는 8,054억 달러로 전월 대비 164억 달러 감소해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국채 시장에서 ‘기간 프리미엄’이 상승한 것 또한 투자자들의 수요 심리가 위축됐음을 보여준다. 기간 프리미엄은 장기 투자 리스크에 대한 보상으로 얻는 추가 수익률을 말한다. 투자자들이 지정학적 불안과 유가 전망,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경제 지표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장기물 국채에 대해 더 많은 보상(수익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투자자들은 경제 전반의 체력에 대해 재평가를 하고 장기 투자를 하려면 수익률이 좀 더 높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재정 적자나 양적 긴축에 대한 고려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