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한국서 혼혈로 태어나 고아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11세 때 미국에 미군 장교가 된 후 25년간 복무를 했던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 이준(50) 중령의 은퇴 스토리가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중령의 가슴 아픈 스토리는 50년 전인 1973년 7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때 흑인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던 당시 22세의 혼혈 한인 여성이 대구 미군부대 캠프 헨리 앞에 바구니에 담은 어린 남자아이와 두살 터울의 누나를 데려와 아이들 아빠 이름만 알려주고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그 어린 남자아이가 바로 이 중령이었다.
이 중령의 모친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갈 경우 한국에서 받고 있는 혼혈이라는 차별과 편견, 멸시를 벗어날 것으로 생각해 미군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미군은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뒤늦게 한국 대구로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성이 혼혈의 고통과 아픔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미군부대 앞에 두고 사라졌던 것이다.
아이 아버지인 미군 병사는 갑작스레 아이들을 넘겨받고 당황해 남매를 고아원에 보냈다. 당시 상횡에서 이 중령을 구한 은인은 당시 아버지의 중대장이었다.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으면 불명예 전역시키겠다”는 불호령을 내렸다. 중대장은 선임부사관과 함께 직접 이 중령 남매를 고아원에서 데려오기까지 했다.
이 중령의 부친은 이 중령을 위탁 가정에 맡기고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위탁 가정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아 이 중령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준’이라는 이름도 두 살 무렵 파출소에 맡겨진 적이 있고 당시 경찰관들이 서류 작업을 위해 지어준 것이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에다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미군 물품이 거래되는 암시장에서 심부름 하고 수고비를 받으면서 살았던 이 중령은 부친이 전역하던 1984년 2월25일 11세의 나이에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타코마로 이주했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한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그는 부친의 이름인 ‘레이먼드 워맥’이란 이름을 물려받아 뒤늦게 학업을 시작했다. 헌신적인 교사의 도움으로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으며 타코마 링컨고교 시절엔 풋볼에 두각을 나타내 유망주로 떠올랐고 워싱턴 주립대에서 러닝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프로 풋볼선수를 꿈꾸던 그의 진로가 군인으로 급선회한 계기는 “친엄마를 찾았다”는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는 흥신소를 고용해 아이들의 친모를 수소문했다. 놀랍게도 자신들을 미군 부대에 맡겼던 어머니는 다른 미군과 결혼한 뒤 같은 도시인 타코마로 건너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중령은 자신을 있게 해준 그 ‘수호천사’ 중대장을 롤모델로 삼아 ROTC에 지원했고 1998년 소위로 임관했다. 군인 복무를 위해 서류에 공식 이름을 적을 때 그는 ‘레이먼드 워맥 주니어’ 대신 모든 서류에 있었던 이름 ‘이준’을 적었다.
이 중령은 자신이 군부대에 맡겨졌던 ‘7월24일’에 맞춰 지난 7월24일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 워커에서 전역식을 가졌다.
< 황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