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명 먹일 수출길 막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에도 양국 농산물이 흑해를 통해 안전하게 수출될 수 있도록 한 흑해곡물협정이 17일 체결 1년을 앞두고 러시아의 탈퇴로 결국 종료됐다.
흑해 곡물 협정은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쟁 이후 벌어진 세계 식량난 완화에 크게 기여했으나, 이번에는 종료를 피하지 못하면서 위기 재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흑해곡물협정을 “희망의 등대”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협정이 만료되면서 세계 식량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다. 러시아의 침공 전인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보리 3위, 옥수수 4위, 밀 5위 수출국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곡물의 95%를 오데사항 등 흑해 연안 항구를 통해 수출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막히자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했다. 협정 체결 직전인 지난해 6월 세계 밀과 옥수수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56.5%, 15.7% 급등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식량난이 고조됐다.
결국 유엔과 튀르키예(터키)가 중재에 나섰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7월 흑해에서 곡물 수출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협정을 맺었다.
곡물 협정이 타결된 뒤 우크라이나는 오데사항 등 3개 흑해 항구를 통해 지난 1년 동안 3,290만t(톤)의 곡물을 수출했다.
우크라이나 항구에 5개월째 쌓였던 곡물이 다시 수출길에 오르면서 식량 부족과 곡물 가격 급등세를 진정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밀 가격은 올해 들어 약 17% 하락했고, 옥수수 시세도 약 26% 내려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협정 체결 직후 72만5,000t에 달하는 인도주의적 식량 원조를 에티오피아와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기아에 허덕이는 최빈국에 전달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7월 보고서에서 식량 지원을 해야 하는 국가가 45개국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식품 가격 급등이 이들 국가에서 기아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무역 전문가인 스위스 장크트갈렌대학의 시몬 에버네트 교수는 “흑해 협정은 여러 국가의 식량 안보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흑해곡물협정 중단은 높은 부채 수준과 기후 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WFP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곡물은 전 세계 4억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